[이 공약 가능한가] 이재명의 ‘마중물 펀드’ 구상
유종일, 허민 성장과 통합 상임공동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성장과 통합 출범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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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책 싱크탱크인 ‘성장과 통합’이 구상하는 ‘마중물 펀드’는 국가 주요 성장 산업에 정부 재정으로 마중물 투자를 하고, 관련 대기업과 금융회사, 개인투자자 등 민간의 자금까지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AI(인공지능), Bio(바이오), Culture&Contents(컬처 앤드 콘텐츠), Defense(국방), Energy(에너지), Factory Automation(공장 자동화), Global supply chain(글로벌 공급망) 등 알파벳 앞글자 A부터 G까지 7개 분야를 마중물 투자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고 민간이 참여하는 마중물 펀드는 역대 정부마다 있어 왔다. 지난 2005년 중소벤처기업 투자를 위해 조성돼 운영되고 있는 한국모태펀드가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펀드,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 문재인 정부의 뉴딜펀드 등도 마중물 펀드로 분류된다.
그래픽=박상훈 |
◇민간 투자 어려운 부분에 선제 투자
‘관제(官製) 펀드’로도 불리는 마중물 펀드는 국가 정책적으로 중요하지만 수익률이 의심스러워 일반 투자자가 참여를 주저하는 분야에 투입된다. ①정부가 예산을 동원하거나 펀드 조성 목적의 국채를 발행하거나 국책금융기관의 출자로 일단 돈을 만든다. ②이 돈으로 모(母)펀드를 조성하고, 모펀드 아래 몇 개의 자(子)펀드를 만든다. ③자펀드에 민간의 돈을 매칭 형태로 끌어모아 각 산업·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민간 자금을 유인하기 위한 세제 혜택이나 원금 손실 보전 기능을 장착한다. 투자한 산업·기업이 성숙해져 정부 자금이 없어도 잘 돌아가게 될 때, 마중물 펀드가 그 기능을 종료하는 게 목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한 분야에 마중물 펀드가 투입되면 일반 투자자들도 안정적인 투자처로 생각해 더 많은 자금이 투입될 수 있다”며 “마중물 펀드의 긍정적인 선순환이 일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국방과학연구소 찾은 이재명 - 이재명(사진 앞줄 왼쪽에서 둘째)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17일 대전 유성구 국방과학연구소를 찾아 인공지능(AI) 기반 무인체계 연구·개발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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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방식은 예산을 기업에 바로 지원하는 방식보다 복잡하지만, 어느 기업에 투자할지 기본적인 의사 결정을 공무원이 아닌 민간이 한다는 의미에서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재정이 투입된다고 해서 완전히 공무원 손에 맡겨 놓으면 빠르고 수익성 있는 투자 결정이 쉽지 않다”고 했다.
선진국에서도 드물지 않은 재정 투입 방법이다. 민주당은 일본의 ‘GX(Green Transformation·녹색 전환) 컨소시엄’을 모델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50년 탄소 중립을 위해, 일본 정부가 20조엔 규모의 녹색전환 국채를 발행하고, 민간 자금과 함께 총 150조엔을 관련 산업에 투자한 뒤, 국채는 기업에서 탄소 부과금 등을 걷어 갚는다는 구상이다.
◇정권 바뀌면 흐지부지되는 경우 많아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2020년 9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은 KB·신한·한국투자·메리츠 등 금융지주 회장들과 청와대에서 마스크를 쓰고 모여 20조원 규모 ‘국민참여형 뉴딜 펀드’ 조성 계획을 밝혔다.
이후 수익률이 -21.5%까지 떨어져도 가입자는 한 푼도 손해 보지 않는 뉴딜 공모 펀드들이 속속 출시됐다. 정부 정책 자금이 후순위로 함께 출자해서 일정 손실까지 흡수해주는 구조였다. 원금 손실 위험이 낮아 초기엔 완판되는 인기를 끌었다. 펀드들은 2차 전지, 바이오, 친환경 미래차 등 디지털·그린 뉴딜 등과 관련된 기업들이 발행한 주식과 채권에 투자했다. 하지만 지금은 펀드별로 수익률이 플러스부터 -30%대까지 천차만별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각종 ‘녹색성장펀드’가 쏟아졌다. 2009년에는 녹색성장이 ‘테마주(株)’가 되면서 평균 수익률이 60%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태양광 등 업황이 부진해지자 수익률이 -20%로 뚝 떨어지기도 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뜸해지면서, 한때 50개가 넘던 녹색성장 펀드 수는 10여 개로 쪼그라들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통일펀드’가 떴다. 그러나 2016년 북한 핵(核)실험 등 남북 관계가 경색되자 통일펀드가 위축됐다.
정부의 마중물 펀드가 산업을 육성하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주식형 펀드의 경우 기존에 시장에 있던 주식을 매입해 주가를 올리는 역할을 할 뿐, 산업 생태계를 바꾸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주도한 펀드는 정권이 바뀔 경우 정책 연속성이 끊기면서 펀드 수익률이 부진해지는 경우가 많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대부분 운용사들이 정부 정책이니 어쩔 수 없이 관제 펀드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위험 투자에 국민 끌어들인다” 우려도
마중물 펀드는 아직 이재명 캠프의 공식 공약은 아니다. 이 후보가 지난달 “엔비디아 같은 기업을 육성해 국민 지분이 30% 정도 되면 세금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이후 당 공식 조직이나 외곽 그룹에서 펀드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통일된 안은 없다.
민주당 정책위원회가 지난달 밝힌 국민참여형 펀드(PPP, Public Private Partnership)의 경우 국민·기업·정부·연기금 등 모든 경제 주체를 대상으로 PPP를 최소 50조원 규모로 조성하고, 이를 국내 첨단 전략 산업 기업이 발행하는 주식이나 채권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당내에서는 “어디에 투자하게 될지도 모르는 펀드를 일반 국민에게 공모한다는 건 다소 위험한 발상” “급조한 정책”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민주당 산하 조직인 ‘미래경제성장전략위원회’는 지난달 말 당시 이재명 대표에게 30쪽 분량의 이른바 국부펀드 관련 보고서를 제출했다. 현재 여러 정부 기관에 흩어져 있는 기존 중소형 국부펀드를 제대로 활용하자는 취지다. 50조원 규모의 국민참여형 펀드를 조성하자는 내용은 정책위 안과 유사하다. 성장위 관계자는 “아직 공약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중소형 국부펀드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부펀드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컨트롤타워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부 펀드·마중물 펀드
국부 펀드(Sovereign wealth fund): 정부가 소유 또는 관리하는 공공자금을 출자해 설립한 투자 기구다. 주로 무역 흑자나 외환보유액 같은 외화 자산(주로 미국 달러)을 굴려 수익을 내기 위해 만든다. 다른 기관에 자산을 맡기거나 직접 운용해 수익을 낸다.
마중물 펀드: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공약으로 검토 중인 정부 주도 펀드의 이름. 인공지능(AI)과 바이오 헬스, 방위산업 등 7개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였다.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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