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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8 (일)

    역사의 폭력에 망각으로 맞서기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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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우한일기’의 작가 팡팡의 소설 ‘연매장’은 1950년대 중국 토지개혁으로 큰 상처를 입고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사진은 드라마 ‘삼체’에서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지식인과 부르주아를 군중 재판하는 장면. 넷플릭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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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팡팡은 코로나19의 진원지인 중국 우한에서 이 질병의 발생과 확산, 정부의 안이한 대응과 은폐 시도, 강요된 침묵과 공포 속에 살아남기 위한 시민들의 분투를 담은 기록물 ‘우한일기’(2020)로 알려진 작가다. 그의 소설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연매장’은 2017년 루야오문학상을 수상한 그의 대표작이지만, 1950년대 토지개혁을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중국에서는 금서로 지정되었다.



    ‘연매장’(軟埋葬)이란 관은 물론 감싸는 천이나 멍석도 없이 주검을 곧바로 흙에 묻는 매장 형태를 가리킨다. 소설 속 한 인물의 설명에 따르면 누군가 “원한을 품은 채 죽으면서 환생하고 싶지 않을 때” 택하는 방식이 연매장이다. 소설에서 이 말이 처음 나오는 대목은 주인공인, 칭린의 어머니 딩쯔타오가 남편의 목숨을 앗아간 교통사고 현장에 도착해서 이렇게 외쳤을 때였다. “연매장은 안 돼요! 그 사람을 연매장할 수는 없어요!”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외쳐 놓고도 실은 딩쯔타오 역시 연매장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하는 터였다.



    말하자면 연매장이라는 희소한 말이 감춘 역사와 수수께끼를 추적하는 것이 이 소설의 얼개다. 추적의 주체는 칭린이고, 소설 말미에서 ‘연매장’이라는 낯선 말과 다시 마주친 그는 어렸을 적 아버지의 사고 현장에서 어머니가 그 말을 외쳤다는 기억을 되살려낸다. 그렇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 낱말을 추적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남편이 숨진 뒤 가정부로 일하면서 외아들을 대학에까지 보낸 딩쯔타오는 그 아들이 성공해서 마련한 저택에 입주하면서부터 이상 증세를 보인다. ‘체런루’니 ‘싼즈탕’이니 하는 정체불명의 말을 내뱉는가 하면, “여기, 지주의 집 같지 않니? 재산 분배가 두렵지 않아? 그들이 찾아올 거야”라며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딩쯔타오의 이상 및 불안 증세는 급속히 나빠져서 결국 몸은 멀쩡하되 말과 의식을 잃어버린 상태로 나아가고, 칭린에게는 그런 어머니가 “거대한 책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어머니라는 책에 담긴 본문을 읽어 나가는 것이 곧 칭린의 추적인 셈이다.



    이후로 소설은 두 가지 이야기가 엇갈리며 나아간다. 칭린의 추적이 하나의 갈래이고,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딩쯔타오 자신의 기억 여행이 다른 하나의 갈래이다. 여기에다가, 죽은 아버지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전해인 1948년부터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1966년까지 몰래 써둔 일기 역시 칭린의 추적에 큰 동기와 도움이 된다. 이런 다각적인 구성 덕분에, 칭린이 아직 암중모색인 상태에서도 독자는 사태의 어렴풋한 진상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지주 계급이었던 딩쯔타오가 ‘투쟁 대회’라는 군중 재판을 수반한 토지개혁으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온 가족이 죽음을 맞았으며, 그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만나 남편이 된 의사 우자밍 역시 지주 계급이었던 과거를 평생 속이고 가짜 신분으로 살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당신 과거는 평생 떠올리지 말아요. 당신의 가장 큰 적은 외부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이 떠올리지 못하는 기억이야.”



    문화대혁명 초기에 우자밍은 딩쯔타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망각의 생존법’인 셈인데, 잃었던 기억을 되살렸던 딩쯔타오가 기억 여행의 끝에서 죽음을 맞는 결말은 남편의 우려와 당부가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한다.



    토지개혁의 취지가 경자유전(耕者有田, 농사 짓는 사람이 땅을 소유해야 한다)의 원칙에 따라 지주의 토지를 회수해 농민에게 분배하는 데에 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가난뱅이와 부자는 영원히 평등해질 수 없어. 모두가 평등했던 때가 세상에 언제 있었냐고?”라며 딴지를 놓는 인물, 또는 개인적 복수를 위해 토지개혁을 이용하는 등의 인물은 금서 지정의 배경을 짐작하게 한다. 그렇지만 역사란 섬세하지도 너그럽지도 않은 것이어서, 격변의 시대가 몇몇 개인들의 삶을 부당하게 망가뜨리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온 화원에 무덤이 흩뿌려놓은 듯 자리하고 있었다. 나무 밑과 담장 아래, 망가진 화단 옆, 화단 안쪽, 대숲까지 시선이 닿는 곳마다 띄엄띄엄 있었다. 무덤마다 돌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소설 말미에서 칭린이 마주친 연매장의 현장이다. 귀신의 집이라며 버려진 대저택의 화원에 남은 이 무덤들은 자발적이지만 원한 가득한 죽음을 증거하는 것인데, 이것들이 어머니 딩쯔타오와 어떤 관련을 지니는지를 칭린 자신은 소설이 끝나도록 알지 못한다. 아니, 알기를 거부한다. 그것이 무덤 주인들의 뜻이자 어머니와 아버지의 바람이었다고 그는 믿는다.



    “칭린은 알기 싫은 일을 알려 하지 않는 것도 강함의 또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긴 시간이 진실의 모든 것을 연매장했다. 설령 안다고 해도, 그게 진실의 모든 것이라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의 대학 동기이자 현직 건축 전공 교수인 룽중융은 그와 생각이 다르다. 대부호 장원들의 생성과 몰락에 얽힌 사회사를 책으로 쓰고자 하는 그는 어머니의 흔적을 좇는 칭린과 의기투합해 현장을 답사하는데, 칭린이 마지막 순간 뜻을 접은 뒤에도 답사와 추적을 이어 나간 끝에 마침내 사태의 핵심에 접근한다. 그렇게 확인한 사실을 책에 담겠다는 생각을 칭린에게 전하며 그가 덧붙이는 말에 역사적 진실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가 요약되어 있다 하겠다.



    “너는 필요 없을지 몰라도 역사는 진실이 필요하거든. 누군가는 망각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기록을 선택해. 우리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살아가면 되는 거야.”



    소설에서 마지막 발언권을 지닌 칭린이 “진실이 어떻게 언어와 글로 표현될 수 있겠니?”라며 냉소하고는 있지만, 독자는 그 말을 신중하게 새겨들어야 할 듯하다. 어쨌든, 죽은 아버지의 일기에 담긴 진실의 나침반이 칭린 자신을 인도하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이 소설의 지은이가 저 유명한 코로나 일기의 작가가 아닌가 말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연매장 l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문학동네, 1만7500원




    한겨레

    문화대혁명 초기인 1966년 9월15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홍위병들이 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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