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문화적 맥락까지 알아야 와닿는 감정은 번역이 쉽지 않지만 언어마다 특정 감정 표현에 이점이 있으므로 번역이든 차용이든 서로 주고받는 역동성이 바람직하다. 게티이미지뱅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번역 불가능성을 논할 때 많이 나오는 어휘는 주로 감정과 관련이 있다. 특정한 나라나 문화권에만 있는 어떤 사물이나 음식 이름 따위도 많지만 대개들 눈에 보이기 때문에 ‘피자’처럼 차용어로 쓰든 ‘쌀국수’처럼 번역을 하든 개념 이해가 크게 어렵지는 않다. 반면에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알아야 와닿는, 한국어의 ‘한’이나 ‘정’ 같은 말들은 번역이 쉽지 않다. 언어마다 특수성이 있다는 것도 결국은 모든 언어에 보편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번역이 어렵다거나 심지어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하는 것은 하필 어떤 사물이든 개념이든 느낌이든 그에 딱 맞는 말의 유무가 언어마다 다르다는 것뿐이지 막상 우리가 같은 인간으로서 이해하려 들면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니다.
감정이나 심리 상태를 일컫는 낱말들도 얼마든지 딴 언어에 차용된다. ‘원한, 증오, 질투 따위의 감정이 되풀이되어 마음속에 쌓인 상태’를 일컫는 프랑스어 ressentiment(르상티망)은 주로 니체에게서 비롯돼 철학, 심리학, 사회학적 논의에서 한국어나 영어에서도 왕왕 쓰인다. 어원이 같고 뜻도 비슷한 영어 resentment(리젠트먼트: 분함, 억울함, 분개)는 대개 단기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이므로 뉘앙스가 좀 다르다. 프랑스어 ennui(앙뉘: 지겨움, 지루함)도 영어에 들어와서는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얕은 지겨움보다는 삶의 권태를 주로 함의한다. 마찬가지로 독일어 Angst(앙스트: 불안, 근심)도 영어 anxiety(앵자이어티: 불안, 근심)보다 깊은 실존적 불안을 일컫기에, 실존적 위기를 처음 겪는 청소년들의 심리나 감정 상태를 다룰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이렇듯 말을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이미 비슷한 말이 있더라도 좀 더 좁고 세밀한 의미가 되는 차용어를 더 강렬하고 구체적인 맥락에 딱 맞게 쓸 수 있다.
누구나 곧바로 이해하는 개념이라도 그걸 구체적인 말로 나타내지 않는 언어도 있다 보니 그럴 때 외래어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영어에서도 많이 쓰는 독일어 Schadenfreude(샤덴프로이데)는 ‘손해+기쁨’의 얼개로 남의 불행에 느끼는 기쁨을 뜻한다. 정도야 달라도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이므로 독일 사람들 성질이 유독 고약해서 생긴 말은 아니다. 한국어 ‘고소하다’나 ‘쌤통’도 이런 악감정과 관련된 말인데, 전자는 형용사이며 후자는 감정 상태를 뜻하는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용어가 아닌 화자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라서 좀 다르다. 주로 ‘쌤통이다’처럼 나타나고 영어 ‘serves you right’(서브스 유 라이트)가 얼추 이에 해당한다.
영어 동사 gloat(글로트)는 ‘(남들 보기에 불쾌하게) 스스로의 성공에 기뻐하다’와 ‘남의 불행에 기뻐하다’를 다 뜻해서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반대말인 ‘남의 행복이나 기쁨을 함께 기뻐함’인 Freudenfreude(프로이덴프로이데)가 영어권에 퍼지기도 했다. 원래 독일어에는 없는 엉터리 말인데 ‘기쁨+기쁨’이라는 엉성한 얼개가 오히려 재미를 더한다. Schadenfreude(손해+기쁨)의 반대말을 굳이 만든다면 Glücksfreude(글뤽스프로이데: 행복+기쁨)가 나았을 텐데 19세기에 그림 형제가 엮은 독일어 사전에는 실린 말이지만 실제로는 잘 안 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듯이 남의 행복 탓에 괴롭다는 뜻인 Glückschmerz(글뤽슈메르츠: 행복+고통)도 정작 원어에는 없는 영어식 가짜 독일어다.
한국어에도 콩글리시가 있듯이 언어들이 서로 만나면 원래의 모습을 곧이곧대로 간직하는 게 늘 의미가 있지는 않다. 한자어도 한·중·일이 다 다른 게 많고 여러 유럽 언어에서 유사 프랑스어, 유사 독일어 등의 변형 차용어가 얼마든지 있는데 언어 접촉에서 흔히 벌어지는 현상이다. 영어에서 재미 삼아서든 실용적 이유에서든 만들어지는 가짜 독일어는 그 언어가 가진 남다른 조어력의 단면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독일어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를 뜻하는 Heimweh(하임베)에 대응해 먼 곳이나 타국을 그리워한다는 Fernweh(페른베)도 있다.
감정이나 심리 상태를 규정하는 말을 만드는 것은 학술 용어의 조어나 정의와도 가깝다. 그래서 이런 것에 독일어가 더 어울려 보이기도 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아니고 말로 표현해야 더 잘 드러나는 감정인 것이다. 또한 예컨대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chronophobia(크로노포비아: 시간 공포증)도 아직 일반 사전에는 거의 안 나오는데 굳이 그리스어 chronos(시간)+phobia(공포)를 결합해 말을 만들었듯이, 막연하게 느끼는 심리나 감정에 이름을 붙여 하나의 그릇에 새로 담을 때 외국어나 외래어가 더 적합한 느낌도 준다. 나의 감정을 나 혼자서만 들여다보기보다는 남을 통해서 바라볼 때 오히려 전에 안 보이던 면모가 드러나듯이 감정 어휘의 차용이나 조어도 그런 관점에서 볼 만하다.
독일어 동사 fremdschämen(프렘트셰멘)은 fremd(남, 타인, 외국)+schämen(부끄럽다)의 얼개인데 ‘남 때문에 부끄럽다’는 뜻이고, 명사는 Fremdscham(프렘트샴)이다. 남의 민망한 짓에 나 스스로가 느끼는 부끄러움이다. 한국어 ‘대리 수치’와 ‘오글거리다’는 영어 vicarious embarrassment(바이케리어스 임배러스먼트)와 cringe(크린지)에 잘 대응하는데, 자생적일지 번역일지는 불확실하나 영어의 영향을 싹 배제할 수는 없을 듯하다. 흥미롭게도 위의 독일어 단어는 영어권의 학술적 논의에서 종종 등장하는 반면에, cringe는 2021년 독일에서 뽑은 ‘올해의 청소년 말’(Jugendwort des Jahres)에 들어가며 딴 유럽 언어에서도 젊은이의 입말에서 왕왕 보이는 영어 외래어다. 21세기부터 널리 퍼진 말들인데 남의 부끄러운 모습이 오글거려서 다른 나라 말을 빌리기도 하는 것이다. 언어들은 저마다 남부럽잖은 구석이 있으니 번역이든 차용이든 서로 주고받는 역동성이 바람직하다.
번역가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