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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8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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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사일언] 장미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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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황염수, 장미, 1976, 캔버스에 유채, 73x6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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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꽃이다. 근현대 화가들의 그림에도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장미는 전통적으로 자주 그리는 꽃은 아니었다. 근대 이전, 동아시아 꽃의 왕은 모란이었다. 장미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이후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한 장미는 서양에서 건너온 개량종이다. 그러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말 중국산 야생 장미가 유럽에 건너가 교배되어 탄생한 하이브리드 품종임을 알 수 있다. 장미는 이미 꽃 자체로 근대화된 존재였다.

    중국 남송 시대 마원은 ‘백장미도’에서 하얀 들장미를 클로즈업해 그렸다. 동아시아 장미화 가운데 가장 이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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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원, 배장미도, 남송, 비단에 채색, 26.2x25.8cm, 베이징고궁박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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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 소박한 야생 장미의 모습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18세기 말 유럽의 식물 채집가들이 월계화 계열 장미를 가져가면서 운명이 달라졌다. 유럽 원예사들 손을 거쳐 화려한 색감과 풍성한 꽃잎을 자랑하는 ‘모던 로즈’로 다시 태어난 장미는 동양으로 다시 역수입됐다.

    현대의 장미는 1890년대 대한제국 시기 서구 열강의 대사관들에서 유행한 정원 문화와 함께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대부터 빠르게 대중화된 장미는 한번 심으면 오랫동안 피어나는 강인함으로 일상의 꽃이 됐다. 1920~30년대 번역 문학의 유행과 함께 장미는 ‘사랑과 고통’ ‘영원과 덧없음’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릴케의 시에서 장미가 갖는 존재론적 의미는 한국 지식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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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승, '들장미'. 1964, 캔버스에 유채, 184x150cm. /국립현대미술관


    근대 화가들의 정물화 속 장미는 달라진 생활 양식을 말해 준다. 김인승의 작품에서 장미는 신여성과 함께 근대적 일상을 꾸미는 오브제가 됐고,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에서는 가시를 품은 여인의 분신이 됐다. 화려함보다 외로움과 고독을 머금은 장미였다. 대중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대 ‘블랙 로즈’ 초콜릿 광고는 도시적 세련미와 여성성을 압축해 보여줬고, 동양화 분야에서도 ‘사계장춘’을 기원하는 꽃으로 각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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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블랙로즈' 초코릿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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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조선호텔장미원' 엽서, 19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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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 한 송이의 여정은 우리에게 근대의 또 다른 초상을 보여준다. 동양의 야생 장미가 서양을 거쳐 ‘모던 로즈’로 돌아오는 과정은, 한국이 겪은 근대화의 축소판과도 같다. 그렇게 화가들이 그려낸 캔버스 속 장미는 우리가 꿈꾸던 근대적 삶의 상징이었다.

    인간사에서 변화는 피할 수 없다. 시대마다 다른 얼굴을 품어온 장미처럼, 우리도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장미가 젊음과 생명력의 상징을 지켜왔듯, 우리 또한 생존 너머의 인간다움이라는 본질만은 잃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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