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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6 (금)

    최고의 자리, 최악의 인간들 [똑똑!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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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이 지난 4월5일 오후 서울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연 ‘승리의 날 범시민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민주주의 승리를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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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강병철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출판인



    한때 개를 키웠다.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어머, 골든리트리버네요. 친절하고 다정해서 애들 있는 집에 최고지요!” 이런 일이 반복되며 여기저기서 견종의 특성을 얻어들었다. 예컨대 요크셔테리어는 고집이 세지만 애교 만점이다, 셰퍼드는 용감하고 충성스럽다 같은 것. 말 안 듣고 멋대로 행동한다는 ‘3대 악마견’이 있는가 하면, 지능에 따른 견종 순위 같은 것도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자꾸 듣는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저절로 그렇게 되듯, 나도 이런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다 개의 인지와 행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쓴 책에서 이런 대목을 읽고 깜짝 놀랐다. ‘견종은 개의 행동이나 성격과 아무 관련이 없다. 선택육종의 결과 공통적인 체형과 외모를 지닌 것뿐이다.’ 저자들은 장애인을 돕는 보조견을 효율적으로 육성하는 방법을 연구했는데, 결국 ‘모든 개는 다르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강아지 때 인지, 기질, 자제력, 기억력 등을 다면적으로 파악해 보조견이 될 만한 개는 전문적으로 훈련하고, 다른 특성을 지닌 개는 일찌감치 맞는 역할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한 헌법 제1조를 참담하게 깔아뭉개는 일이 6개월째, 매일같이 벌어진다. 가장 기막힌 것은 어떻게 저런 자들이 국가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느냐는 물음이다. 손바닥에 ‘임금 왕’ 자를 쓴 채 티브이 토론에 나온 날부터 윤석열과 김건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엽기적인 행각을 이어갔다. 비상계엄 당시 행적이 분명치 않은 전직 국무총리는 헌법재판소를 장악하려다 좌절되자 느닷없이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며 무리수를 두다 망신을 당했다. 집권당이었던 국민의힘은 대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이런 저질 쇼를 펼치는가? 한편 전직 기획재정부 장관은 헌법재판관 임명을 두고 꼼수를 부리더니, 환율을 방어해야 할 경제 수장이 원화 평가절하 때 이익을 보게 되어 있는 미국 국채에 투자한 사실이 밝혀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뿐인가? 법원은 검찰과 손발을 맞춰 전례 없는 법 적용으로 내란 수괴를 풀어준다. 대법원은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에게 판결로 영향을 미치려 한다. 국가가 어떻게 되든, 국민은 죽든 말든 기득권 세력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식이다. 우리는 어쩌다 이런 자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가?



    많은 요인과 맥락이 있지만, 인재 양성과 등용 체계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오직 시험 치는 기술로 사람을 평가하고, 어린 나이에 정한 기준에 든 사람을 높이 쳐서 사회와 거리를 둔 채 엘리트 코스를 밟게 하는 관행은 공부 잘하는 바보, 비겁하고 교활한 관료를 만들기 딱 좋다. 특정 학교와 직군끼리 패거리 짓는 문화가 싹트기에도 더없는 조건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 벌어진 일을 지문으로 주고 올바른 행동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낸다면 앞서 예로 든 모든 사람이 만점을 받지 않을까? 하지만 왜 행동은 다를까?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특별 대접을 받았고, 자신의 ‘계급’이 자신을 지켜주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서울대를 수석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면 훌륭한 사람인가? 청렴하고 공정하며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면 분명 그렇다. 그러나 공동체가 어찌 되든 자기 이익만 챙기고, 동료 엘리트와 결탁해 그런 사실을 감추고, 항의하는 시민을 짓밟는다면 없느니만 못한 존재, 도려내야 할 종양에 불과할 것이다. 지난 6개월간 우리는 이런 자들을 너무 많이 봤다.



    어떻게 하면 사심이 없고, 공정하며, 능력이 출중한 인재를 키우고, 적재적소에 등용할 것인가? 우리가 천운으로 이번 사태를 극복한다면 제도의 정비와 함께 반드시 이 점을 돌아봐야 한다. 언제까지 시험 잘 치는 요령만 익힌 얄팍한 자들을 인재로 대우할 것인가? 한낱 개조차 특성을 다면적으로 파악해 교육한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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