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조직 일원이 수사 대비해 증거 인멸한 것"
앞서 용산서 자료 삭제 지시 혐의로 1심 징역형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내부 보고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는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이 지난해 2월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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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이후 서울경찰청 직원들에게 핼러윈 대비 관련 내부 보고서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는 박성민(58)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경무관)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홍다선 판사는 9일 증거인멸 교사,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교사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부장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홍 판사는 이태원 참사를 언급하면서 "불행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사고 원인과 경과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거쳐 관계자들이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하고, 다시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경찰조직 일원인 피고인이 수사를 대비해 증거를 인멸하게 하고, 정보조직이 일사불란하게 관련 정보를 파기하기에 이르렀다"며 "이는 묵묵히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경찰관들의 직업적 자긍심과 헌신, 이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배반하는 행위"라고 질책했다.
홍 판사는 또 "일부 경찰관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허위 진술이나 모호한 진술을 했다"며 "이들이 지키려는 특정 집단의 이익이 국가 형벌권의 실현을 상회하는 것인지 회의감이 든다"며 부하 직원들도 질타했다.
박 전 부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규정에 따른 문서 관리를 강조한 것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박 전 부장이 경찰 책임이 부각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문건 파기를 지시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태원 참사 전에 작성된 경찰 내부 보고서에는 '거리두기 해제로 핼러윈에 인파가 운집할 것이 예상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부장은 2022년 11월 2~4일 서울경찰청 부서 내 경찰관들에게 핼러윈 대비 관련 자료 폐기를 지시하고, 부하 직원의 컴퓨터에 저장된 관련 보고서를 삭제하도록 했다. 문건 폐기 지시는 단체채팅방 메시지, 서울경찰청 정보부 과·계장 회의 등을 통해 여러 차례 하달됐다. 박 전 부장은 이 과정에서 압수수색을 언급하면서 '규정에 맞지 않는 문서를 보관하는 일 없도록 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박 전 부장은 이 밖에 2022년 11월 2일 용산경찰서 정보관들에게도 컴퓨터에 보관 중이던 다른 이태원 핼러윈 관련 자료 4개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해당 사건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이 판결에 대해 "이태원 참사 직전 경찰이 인파밀집을 예측하고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참사 이후에는 관련 정보를 파기하고 은폐·축소하기 급급했던 것과 관련해 형사책임을 다시 한 번 인정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또 "지난해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해 최근 조사개시 결정도 이뤄졌다"며 "조사를 통해 경찰이 은폐하려 했던 진실이 무엇인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나연 기자 is2n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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