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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산자부로 넘겨라” 朴 한마디에 통상교섭본부는 해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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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

    ①2013년 통상교섭본부 해체 전말

    2012년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에 지시

    충격에 빠진 외교부, 해외 출장 간 장관 긴급 귀국

    조직 술렁거리자 “신중하게 행동하라”전 직원에 이메일

    위성락 대사 “이메일로 입단속 할 일이냐”며 반발

    2017년 文정부서 부활...“이전만큼 기능 못해”

    조선일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13년 2월 13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정부 조직 개편 때 통상교섭본부를 외교통상부에서 떼어 내 산업통상부로 이관하라고 지시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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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 협상했던 웬디 커틀러의 조언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를 지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회장이 16일 트럼프 미 행정부의 상호 관세 부과를 보름가량 남겨두고 중요한 지적을 했습니다. 커틀러 부회장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화상 대담에서 “한국이 미국과의 협상에 집중하려면 (한국) 국내 이해관계자 간 정책 조율을 서둘러야 한다”며 “지금 시간은 한국에 유리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USTR 부대표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그는 구체적으로 이같이 조언했습니다. “당시 한국 협상팀을 이끌었던 외교통상부보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가 조율 과정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같은 부처들은 산자부가 원하는 대로 그냥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산 30개월령(齡) 이상의 소고기 수입 문제 등 농산물 개방과 관련,산자부 소속의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농림부를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 겁니다. 커틀러는 “한국 협상팀이 워싱턴 DC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초기여서 본국에서 할 일도 많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한국 사정에 밝은 커틀러의 언급은 한국이 직면한 최대 현안인 관세 협상에서 대미(對美) 협상 못지않게 대내(對內) 조율이 중요한 과제임을 시사합니다.

    산자부는 본래 한국 산업계를 관리·감독하고 대변하는 부처로, 대외 통상 협상에서도 자동차나 반도체 등 관련 기업의 입장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농축수산물 관련 협상에서 농림부와는 입장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통상교섭본부가 제3의 기구가 아닌 산자부 산하다보니, 농림부나 농업계의 반발을 야기할 소지가 크다는 점입니다. 이는 1998년 출범한 통상교섭본부가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해체되고, 그 기능이 산자부로 이관된 후 현재까지 계속되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현재의 통상교섭본부는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4 년 5개월만에 부활했지만, 그 기능이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조선일보

    김용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2013년 1월 15일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서 인수위의 정부 조직 개편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유민봉 국정기획조정 간사, 오른쪽은 윤창중 대변인./조선일보


    18대 대통령직 인수위 전격 발표, 민주당은 반대

    2012년 12월 대선 직후 구성된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는 박 당선인의 지시로 정부 조직 개편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외교부의 통상 기능 이관을 비밀리에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한 소식통은 “박 당선인의 지시로 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통상교섭권을 갖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하에 개편 작업이 진행됐다”고 했습니다.

    2013년 1월 15일 대통령직 인수위가 외교통상부로부터 통상교섭본부를 떼어 내 지식경제부와 합쳐 산업통상자원부를 만든다고 발표했습니다. 외교통상부 간부들과 직원들은 이날 인수위 발표가 나올 때까지 통상교섭본부가 떨어져 나간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박 당선인 주변에 나중에 장관에 임명되는 윤병세 전 외교안보수석과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한 김종훈 의원, 외교부 차관보를 역임한 심윤조 의원이 있어서 조직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인수위가 외교부에 아무런 귀띔도 하지 않아,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해외 출장 중에 이같은 발표를 전해듣고 일정을 나흘 앞당겨 급히 귀국해야 했습니다.

    인수위 발표에 외교관들이 받은 충격은 컸습니다. 당시 저는 외교부를 출입하고 있었는데, 조직 전체가 술렁거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재외공관에 나가 있는 외교관들이 본부로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인수위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는 외교관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외교관 A씨는 “외교부에 신설된지 15년이 지나 화학적 결합이 끝난 조직을 통째로 들어내면 어떻게 하느냐”고 분노했습니다.

    ‘통상교섭본부 엑소더스(탈출)’ 현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통상교섭본부의 외교관 B씨는 “우리는 외교관으로 일하기 위해 외교부에 들어온 사람들인데 인수위의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일반 공무원으로 전직(轉職)해야 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당시 외교부 본부 직원은 900여 명인데, 이 중 통상교섭본부 소속이 150여명이었습니다.

    학계에서는 인수위의 이번 조치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했습니다. 이화여대 최원목 교수는 “이제는 산업정책 위주로 통상을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통상교섭본부를 외교부에서 떼어내고 싶으면 차라리 미국의 USTR처럼 독립된 기구로 만드는 것이 낫다”고 비판했습니다. 일각에선 외교부의 반발에 대해 외교관으로서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인수위의 통상기능 이관 결정에 대해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당시 당명은 민주통합당)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변재일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은 1월 16일 원내 현안 대책 회의에서 “통상 기능이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되면 수출 대기업 중심의 FTA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습니다. 변 의장은 “통상 기능 가운데 중요한 것은 바로 FTA다. FTA는 산업 부문뿐만 아니라 국민 생활과 소비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외교통상부에서 업무 추진을 할 때도 국민 생활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통상 기능이 이관되면 수출 대기업 중심으로 갈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인수위의 ‘전문성 없다’는 지적에 반발

    인수위는 당시 통상교섭본부가 전문성이 없다고 폄하하는 듯한 발표를 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정부조직 개편을 지휘한 유민봉 대통령직 인수위 총괄간사는 1월 15일 브리핑에서 “통상을 산자부로 이관함으로써 통상 관련 전문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가 참여함으로써 국익을 보호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일부 외교관들의 전문성 부족을 지적하는 것과 같은 논리였습니다.

    이에 대해 외교부가 전문성이 없는 집단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 부(部) 차원에서 항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인수위의 이같은 발표에 통상 전문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일해 오던 통상교섭본부 외교관들은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외교관들의 분노에 불을 끼얹은 것이 외교부에서 전 직원들에게 조직 개편 관련, 자중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전 직원에게 보낸 것이었습니다. 정부 조직 개편 관련, 논란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취한 조치였지만, 이에 대해 반발하는 기류가 외교부 직원 게시판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태를 막지 못한 외교부 지휘부에 대한 비판도 나왔습니다. 공개적으로 강하게 반발한 고위급 외교관은 모스크바에 주재 중이던 위성락 주러시아 대사(현 국가안보실장)였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외교부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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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성락 주러시아대사(현 국가안보실장)는 2013년 1월 외교부가 전 직원에게 통상교섭본부 이관에 대해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데 대해 반발하는 글을 외교부 게시판에 올렸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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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일 받아보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몇 자 적습니다. (정권이 교체되는) 민감한 시기에 (통상교섭본부 이관이라는) 민감한 내용이 발표되니, 직원들의 다기 다양한 반응이 초래할 반향을 조직 차원에서 우려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이런 입단속을 직원 각자에게 메일로 보낼 때에는, 받아 보는 개개인이 어떻게 느낄지도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공지사항에 올리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또, 직원 다수는 충격적인 소식 앞에서 고뇌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단속과 함께, 우리 부의 대처 방향의 대강이라도 바로 제시하는 것이 조직의 안정에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본부 대응에 감안하여 주시기 부탁합니다. 건안을 기원합니다.”

    통상 교섭 주체 놓고 논란

    외교부 직원들의 반발과는 별개로, 인수위의 발표대로 통상교섭본부가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될 경우, 통상 교섭의 주체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외교부는 1월 18일 해외 출장을 단축하고 급거 귀국한 김성환 장관이 주재한 회의에서 통상교섭본부가 이관될 경우, 정책과 교섭 부문으로 나눠서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마련했습니다. 통상교섭본부의 업무 중에서 정책 부문이 이관되는 것을 막을 수 없지만 통상과 관련된 교섭 및 조약 체결의 업무는 외교부의 고유 업무이기에 현행대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지식경제부는 ‘국익을 위해선 산업을 잘 아는 부서가 교섭하는 게 맞는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미국과 EU 등 통상 부문 비중이 큰 곳을 제외하면 통상과 무역이 분리된 나라도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지경부 권평오 대변인은 “인수위에서 밝힌 취지와 같이 교섭과 그에 따른 사후 대책을 한 곳에서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인수위 발표대로 확정

    2013년 1월 22일 인수위 발표에 따라 1998년부터 15년간 활동해 온 외교통상부의 통상교섭본부 해체가 확정됐습니다. 인수위는 외교부의 통상교섭 및 총괄조정 기능은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移管)하고 외교부에는 다자·양자 경제외교 및 국제경제협력 기능만 남겨두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인수위는 외교부 장관에 위임된 조약체결권의 경우도 통상 분야는 산자부 장관에게 이관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통상교섭본부의 핵심 기능과 자유무역(FTA)정책국·FTA교섭국·동아시아FTA추진기획단을 산자부로 옮기고, 외교부에는 다자통상국·지역통상국·국제경제국만 남겨두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당시 인수위의 강석훈 국정기획조정분과 위원은 “통상교섭본부장을 따로 둘 계획이 없다. 산자부 장관이 통상교섭본부장을 겸임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해 차관 또는 차관보급에서 통상 실무를 총괄한다고 했습니다.

    통상교섭본부장 출신 김종훈 의원의 반대

    당시 외교부 안팎에서는 박 당선인의 지시로 시작된 통상교섭본부의 이관에 대해 제대로 문제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 중에서 이에 반대한 의원은 극소수였습니다. 다선 의원 중에서는 안홍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만 “개편안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도록 의원들을 설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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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김종훈 의원은 2013년 1월 통상교섭본부를 외교부에서 떼어 내 산자부로 넘기는 데 대해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 사진은 2011년 10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통상교섭본부장 신분으로 참석, 한미 FTA 비준안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이다./조선일보


    통상교섭본부장 출신의 김종훈 의원은 “공론화 과정 없이 통상 기능을 산자부로 옮기는 것은 개도국형 체제로의 회귀”라며 “국익 전체보다 특정 산업 이해에 치우칠 우려가 있다”고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특히 농산물 등 민감 사안에서 부처 간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습니다. 김 의원은 외교부의 통상 기능을 유지하되, 조정 기능은 국무총리실 산하 ‘통상교섭처’로 독립시키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외교부는 산업 논리에 매이지 않고 균형감 있게 협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박 당선인은 1월 30일 새누리당 소속 강원 지역 의원들과 오찬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통상 기능을 산업부에 두는 게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있다’는 말이 의원들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러자 박 당선인은 “내가 외통위 상임위 활동을 하면서 느낀 바와 들은 바가 있어서 종합해서 그런 결론을 내렸다. 원안대로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 발언이 새누리당 안팎으로 알려지면서 통상교섭본부 문제는 최종 결론이 나 버렸습니다. 박 당선인의 뜻이 확고하다고 판단한 의원들은 이관이 문제에 대해선 입을 닫았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박 대통령이 외통위 활동을 할 때 어떤 일이 있었으며, 왜 그는 통상교섭본부 해체 및 기능 이전 결정을 내렸을까요?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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