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How]
[보좌관의 세계]
국회의원들 갑질 얼마나 심하길래
국민의힘 보좌진이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열린 지난 14일 국회 본청에서 강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강 후보자는 ‘보좌진 갑질’ 논란이 커지자 청문회 이후 9일 만인 23일 자진사퇴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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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소리 질러 대는 의원, 여성 보좌진에게 술자리 강요하는 의원, 해고한 뒤 다른 의원실 취업 방해하는 의원.”
지난 21일 페이스북 게시판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이다. 자신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의원들에게 대놓고 항의하지 못하는 국회 보좌진들이 익명으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는 공간이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쓰레기 처리’ ‘비데 수리’ 등과 같은 보좌진 ‘갑질’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자, 이 게시판에는 “나도 갑질당했다”며 성토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 한 의원실은 보좌진이 대거 교체됐다. 12·3 비상계엄과 6·3 대선 국면이 이어져 휴가를 못 간 보좌진들이 의원에게 “짧게 휴가를 가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의원은 “너희가 무슨 일을 했느냐”며 화를 내더니, 며칠 뒤 해고 통보를 했다는 것이다. 전직 보좌관은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라고 했다.
의원이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보좌관이 있다면, 다른 보좌진에게 ‘왕따’를 지시하는 등 보이지 않는 괴롭힘을 통해 자기 발로 나가게 하는 일도 허다하다고 한다. 한 보좌관은 “자기와 사이가 틀어진 보좌관의 평판을 나쁘게 말하며 다른 곳 취업도 방해하는 악질 의원도 있다”고 했다. 다른 비서관은 “의원실은 의원이 왕인 세상”이라며 “9명 보좌진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그들만의 비밀”이라고 했다.
일부 보좌진은 “지금도 의원님 ‘몸종’처럼 사는 보좌진이 상당수”라고 입을 모은다. 주말에 골프를 치러 가는 의원이 수행 비서를 불러 ‘운전 기사’로 부리는 일은 예사다. ‘쓰레기 처리’ 같은 의원 집안일 처리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 한 보좌관은 “자기 집 개털을 깎으라거나 한 포대 분량의 땅콩 껍질을 까라는 의원 등 사례가 너무 많다”며 “나랏돈으로 사노비를 부리는 격”이라고 했다.
보좌진에게 국회 식당에서 자기 밥을 타오라고 시킨 의원도 있었다고 한다. 일부 전직 의원은 1평 남짓한 의원실 탕비실에 전기밥솥을 두고 아침밥을 짓게 했다. 어떤 의원은 국회 본청에서 의원 회관으로 가려는데, 보좌진이 차량을 대기시키지 않아 성질을 냈다고 한다. 국회 본청에서 의원 회관은 걸어서 5분 거리다.
몇몇 의원실은 의원 배우자의 심부름·수행 지시가 명령과 같다. 배우자가 채용 면접을 보는가 하면, 의원실 단체 대화방에 들어오기도 한다. 한 비서관은 “몇몇 의원 배우자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보좌진을 교체하는 일이 있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했다. 의원 자녀도 보좌진들이 모셔야 할 대상이다. 의원 자녀 등하교시키기는 기본이다. 한 보좌진은 “한 전직 의원은 공무 차량을 주고 자녀 운전 연습도 시켰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더한 일도 있었다. 의원들이 나랏돈으로 지급되는 보좌진 월급을 착복했다. 5급으로 보좌진을 채용해 놓고 “넌 경력이 없으니 원래는 7급 대우”라며 5급 월급에서 7급 월급을 뺀 나머지 돈을 의원에게 현금으로 갖다 바치라고 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수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
국회의원 갑질 개선을 위해 국회에선 2018년 전수 조사를 했고 2023년엔 인권 조사도 했다. 이에 따라 인권센터를 만들고 성인지 교육도 강화했지만 절대적인 상하관계 속에서 무용지물이었다. 한 비서관은 “의원 한마디면 하루아침에 잘리는 처지인데 어떻게 국회의원을 고발하고 징계하라고 하겠냐”고 했다.
외국에서는 이와 관련한 제도적 보완 장치가 마련돼 있다. 스웨덴은 의원에게 배속된 보좌진이 없다. 각 정당의 정책 보좌관이나 행정 지원 인력을 공유한다. 정당이 채용해 의원 인사 갑질에서 자유롭다. 미국은 의원 윤리 매뉴얼에 보좌진에게 의원의 자녀 돌봄, 장보기 등을 못 시키도록 하는 ‘금지 사례’가 규정돼 있다. 이를 어긴 의원에 대한 윤리위원회가 열리고 견책, 벌금부터 제명 등 징계를 받게 돼 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미국은 국회의원 윤리 매뉴얼이 480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세분화돼 있다”며 “우리도 이런 매뉴얼을 만들어 강력히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의원이 아니라 국회 사무처에서 업무별, 전문성별로 보좌진을 채용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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