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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4 (일)

    지도에도 안 나와... ‘한국판 노아의 방주’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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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유일 야생식물 씨앗 금고

    ‘백두대간 시드볼트센터’ 가보니

    조선일보

    경북 봉화에 있는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의 외관 모습. 이곳은 국가 보안 시설로 지정돼있다./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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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안에는 흔히 잡초로 불리는 야생 식물의 씨앗을 말려 지하 터널에 영구 저장하는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seed vault·종자 금고)‘가 있다. 해발고도 약 600m 고지에 위치한 백두대간 시드볼트는 기후변화, 자연재해, 환경오염, 전쟁 등에 대비해 식물 씨앗(종자)을 영구 보존하는 시설이다. ’식물판 노아의 방주’로도 불린다. 특히 이곳은 전 세계에 두 곳밖에 없는 글로벌 시드볼트로, 야생 식물만을 전문적으로 보존하는 시설로는 유일하다.

    지난 23일 찾아간 시드볼트는 밖에서만 얼핏 보면 들판 속 울타리를 두른 거대한 은색 버섯 같은 모습이었다. 이곳은 국가정보원의 허가가 있어야만 출입이 가능한 국가보안시설로 지정된 만큼,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다. 위치 정보를 수집하는 테슬라 차량은 인근 접근이 아예 통제된다. 시드볼트의 내부는 지하 깊숙이(정확한 길이는 보안 사항) 내려가는 터널형 저장고 형태로 돼있다. 저장되는 씨앗이 많아질수록 터널을 더 뚫어 개미집처럼 공간을 늘릴 수 있다고 한다. 기자에겐 이날 시드볼트 옆에 있는 시드뱅크(seed bank·종자 은행)까지만 출입이 허용됐다. 시드뱅크는 시드볼트에 최종 보관되는 씨앗을 지퍼백 상태로 밀봉한 뒤 ‘블랙박스’로 불리는 검은 상자에 넣는 작업을 하는 곳이다. 또 시드볼트에 들어간 씨앗의 보존 상태를 점검·연구하기 위해 같은 씨앗을 동일한 조건으로 중복 저장하는 시설이기도 하다. 시드볼트가 장기 저장고라면, 시드뱅크는 중기 저장고인 셈이다. 두 곳 모두 항상 영하 20도, 습도 40%로 유지된다.

    롱패딩과 마스크, 방한 장갑·신발 차림으로 들어갔는데도 냉기가 온몸을 감쌌다. 숨 쉴 때마다 마스크 틈으로 김이 올라왔고, 눈썹에 물방울이 맺혀 얼었다. 호흡에서 나온 수증기 때문에 약 10분 만에 내부 습도가 50%까지 치솟으며 비상벨이 울리기도 했다. 이날 기자까지 포함해 출입한 인원이 평소보다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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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3일 경북 봉화에 있는 시드뱅크에서 관계자들이 각종 야생 식물 종자가 들어 있는 지퍼백을 살피는 모습. 이곳의 온도는 영하 20도로 유지된다. 시드뱅크는 시드볼트에 최종 보관되는 종자를 지퍼백 상태로 밀봉해 블랙박스로 불리는 검은 상자에 넣는 작업 등을 하는 시설이다./장경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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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기자가 들어간 시드뱅크의 한 보관실 안에는 좌우 양옆으로 선반 8개가 각각 길게 설치돼 있었는데, 각 선반 위에는 피나물, 광릉용수염, 날개현호색 등 이름조차 낯선 야생 식물 씨앗들을 담은 회색 지퍼백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연구진은 “생소한 야생 식물이 벼, 밀 같은 작물만큼 중요한 이유는 야생 식물 종자가 모든 종자의 조상이기 때문”이라며 “두메부추라는 야생 식물에서 우리가 자주 먹는 마늘, 양파, 부추라는 작물이 왔다”고 설명했다.

    시드볼트에 들어간 씨앗은 원칙적으로 다시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대재앙이 발생하거나, 특정 식물이 자연에서 완전히 사라진 경우, 또는 기탁자가 반출을 요청했을 때만 예외적으로 꺼낸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기후 위기를 넘어 ‘불타는 지구’라고 불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주변 식물이 언제까지 우리 곁에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산림청 산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이규명 원장은 “기후변화로 극심한 폭우, 폭염 등이 잦아지면서 시드볼트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시드볼트에 저장되는 씨앗도 늘고 있다. 2018년 5만1748점이었던 저장 건수는 올 6월 기준 28만1248점으로 7년 사이 약 5.4배로 늘었다.

    이곳 연구진은 기후 위기로 해수면이 올라 잠길 위기에 놓인 피지, 사모아, 도미니카 등 UN 지정 군소 도서 개발도상국의 야생 식물 보존 사업도 추진 중이다. 오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야생 식물 종자의 30%를 보존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최근에는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원센터가 종자 7000점을 시드볼트에 기탁하기도 했다. 국내외 개인·기관은 이곳에 무료로 씨앗을 기탁할 수 있다.

    ☞시드볼트

    기후변화, 자연재해 등에 대비해 식물 종자를 영구 보존하는 시설이다. 전 세계 글로벌 시드볼트는 한국 백두대간 시드볼트와 노르웨이 스발바르 시드볼트 등 단 두 곳뿐이다. 이 중 백두대간 시드볼트는 야생 식물 종자만을 전문적으로 저장하는 유일한 시설이다.

    [봉화=정해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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