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배경은 서울구치소. 공동취재사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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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 오픈데스크팀장
나에게 허락된 삶의 반경이 1.3㎡(약 0.4평)에 불과하다면?
얼마나 좁은지 상상하기 어렵다면 이런 설명은 어떤가. ‘평균 신장인 성인 남성이 팔을 마음껏 펴기 어렵고 어느 쪽으로 발을 뻗더라도 발을 다 뻗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할 정도’라고 한다.
2012년 서울구치소에 10일간 수용돼 노역을 한 천주교 인권위원회 활동가 강성준씨의 경우가 그랬다. 2016년 12월29일 헌법재판소는 강씨가 서울구치소의 과밀 수용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 등을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을 재판관 만장일치로 위헌 결정했다. 당시 헌재는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인용하며 “과밀 수용으로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멈출 수 없어 결국 스스로 혐오하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이 3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교정시설 과밀 수용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이는 전적으로 서울구치소에 구금 중인 윤석열 전 대통령 덕분이다.
그가 머무르는 독방의 크기는 화장실을 포함해 6.71㎡(약 2.03평)이며 선풍기 한대, 골판지로 만든 낮은 탁자 등이 제공된다고 한다. 선풍기 한대를 오롯이 혼자 쓰는 등의 이점은 차치하고, 크기만 따져봐도 혼거실에 수용됐던 강씨와 견줘 5배 정도 넓다. 그런데 최근 윤 전 대통령을 접견한 신평 변호사는 이 독방을 두고 “처참한 주거 환경으로 생지옥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신 변호사의 주장대로 독방이 ‘생지옥’이라면 교도관이 독방 배정을 대가로 수용자로부터 뒷돈을 받은 정황이 포착돼 경찰이 강제수사에 나섰다는 며칠 전 뉴스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더구나 윤 전 대통령은 잦은 변호인 접견으로 독방 밖에서 시간을 잘 보내고 있지 않나.
윤 전 대통령의 소란스러운 구치소 생활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을 찾자면 “이참에 과밀 수용 문제를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점이다. 앞서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그가 머무는 독방에 에어컨을 설치하라는 항의성 전화와 민원을 서울구치소에 쏟아냈다. 그러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수용시설은 환기, 통풍이 잘 안되는 곳이라 조금만 더워지면 말 그대로 ‘찜통’이 된다”며 “혼거 수용된 경우에는 고통이 몇배 가중된다. 독방에 있는 윤석열은 그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우선순위가 있다면, 윤석열 독방에 에어컨을 놔주는 게 우선이 아니라 과밀 수용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면서 혼거 수용시설부터 에어컨을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5년 신영복 교수가 쓴 “(여름이면)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하”는 혼거실의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가 정한 혼거실 기준 수용자 1인당 최소수용면적은 2.58㎡(약 0.78평)이지만 이를 밑도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8월 기준 전국 교정시설의 수용률은 124.5%, 서울구치소는 152.9%에 달했다. 법무부는 과밀 수용 문제를 해소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수용자 1인당 면적에 대해 국제적으로 정해진 기준이 없고 과밀 수용 금지 원칙을 명시하는 경우 각종 국가배상 소송이 제기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 등을 들었다.
“교도소장님 입장에서 봤을 때 실제 (윤 전 대통령 독방) 그 안 환경이 생지옥이라고 보입니까?” 지난달 31일 서울구치소를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3대 특검 종합대응 특별위원회’ 소속 김병주 의원은 신 변호사의 주장을 언급하며 김현우 서울구치소장에게 물었다. 잠시 침묵하던 김 소장은 “수용시설입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바라건대, 이 질문을 전국 교정시설에 수용된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던져봤으면 한다. 그때도 ‘수용시설입니다’ 같은 아리송한 답변으로 퉁치고 말 건지 궁금하다.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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