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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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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가 폭락하든 “나는 된다”…트럼프식 자기긍정 [트럼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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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엄지척 포즈를 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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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시가 폭락한 10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서 폭주했다. 2시간 사이에 게시글을 100개 넘게 올렸다. 대부분 기사였는데 제목은 이런 식이었다.

“연설 천재 트럼프의 ‘연설의 기술’”
“트럼프는 대통령계의 타이거 우즈”

이날 그는 자신을 칭송하는 기사를 대방출했다. 이런 기사를 모아두기라도 하는 것일까. 노골적인 찬사를 들여다보며 낯부끄럽지 않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올린 게시글을 통해 그의 사고방식을 살펴봤다.

● 폭락장 와중에 “내가 맞다”

트럼프 대통령의 ‘SNS 폭주’ 전날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괜찮았다. 4일 워싱턴 의회에서 한 첫 상·하원 합동 연설은 미국인들에게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연설 직후 CBS 방송과 유고브가 시청자 1207명을 조사한 결과 76%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수긍했다고 답했다. 시청자의 51%가 공화당 지지자, 27%가 중도층, 20%가 민주당 지지자인 점을 고려할 때 중도층도 연설을 긍정적으로 봤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연설은 무슨 내용이었을까. 그는 99분에 달했던 연설 대부분을 국내 정책 성과를 강조하는 데 할애했다. 연방정부 구조조정, 불법 이민자 단속 및 추방,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폐지 등 주요 정책은 물론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했다” 등 취임 43일간 쏟아낸 거의 모든 정책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4일 미 의회에서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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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닷새 뒤 트럼프 대통령이 “침체를 피할 수 없다”는 취지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말한 것이 도화선이 돼 10일 증시가 폭락했다. 이즈음 여론조사업체 유고브와 이코노미스트가 9∼11일 미국 성인 1699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8%는 “미국 경제가 나빠지고 있다”고 답했다. 재집권 직후 같은 질문에 37%의 응답자만 동의했던 것에 비해 큰 폭으로 뛴 것이다.

증시가 폭락하고 여론이 악화하는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서 폭주했다. 경제, 이민 등 주요 정책에 있어 “트럼프가 맞다”고 노골적으로 칭송하는 기사들을 올렸다. 폭락 중인 증시와 관련된 게시글은 단 한 건도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10일 트루스소셜에 공유한 기사. 트럼프 대통령의 ‘천재적인 연설 스타일’을 분석한 내용이다. 사진 출처 트럼프 대통령 트루스소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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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부 기사’ 모아둔 트럼프의 보석함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말 많은 게시물을 쏟아냈다. 6분 만에 25건을 올리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올린 것인지, 누군가에게 지시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통상 그의 개인 소셜미디어는 나탈리 하프(34)가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뉴욕타임스(NYT)와 액시오스 등이 보도했다.

보수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하프는 강경 보수 성향 ‘원아메리카뉴스네트워크’에서 앵커로 활동하다 2022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의 팀에 합류했다. 하프는 2019년 폭스뉴스에 출연해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 서명한 임상시험 법안 덕분에 치료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이야기를 감명 깊게 본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공화당 전당대회에 하프를 연설자로 초대하며 둘은 인연을 맺었다.

2020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는 하프. 사진 출처 공화당 전당대회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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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패배 후 마러라고 생활을 하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하프는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전령’ 역할을 했다. 읽으면 기분이 좋아질 기사와 소셜미디어 게시글을 싹싹 모아서 전달하는 일이 하프의 역할이었다. 하프를 두고 로니 잭슨 하원의원(텍사스주)은 “활발하고 긍정적인 태도가 트럼프 대통령의 기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NYT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은 숭배 수준이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골프 라운딩을 따라다니며 무선 프린터로 기사를 인쇄해 줬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이런 하프에게는 ‘인간 프린터’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프는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인간 알고리즘이다. 그에게 가는 정보의 흐름을 좌우하고 있다. 하프가 필터링한 편향된 정보만 보며 트럼프 대통령이 ‘필터 버블’에 갇혔다는 우려도 크다. 측근들에 따르면 하프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져다주는 극우 성향 콘텐츠와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는 주제와 어투 측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자꾸 읽다 보니 입에 붙은 것으로 보인다.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직후 집무실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 행사에 참석한 하프(가운데). 사진 출처 C-SPAN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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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게시글 업로드 또한 하프에게 자주 시킨다고 한다. 공보팀과 상의 없이 오직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행동해 마찰을 빚은 적도 있다. 액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야겠다’고 하면 나탈리가 그의 말을 받아 적어 즉각 업로드한다. 아부성 기사를 읽고 싶다고 하면 나탈리가 출력해 준다. 그 기사를 공화당 의원에게 보여줘야겠다고 하면 대신 문자 메시지도 보내준다”고 전했다.

하프의 백악관 직책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가까이서 보좌를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종종 그를 찾아볼 수 있다. 10일 놀라운 속도로 공유된 기사들도 하프가 모아둔 기사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

● “나는 된다” 트럼프식 사고방식

트럼프 대통령은 왜 이렇게 아부에 집착할까.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저서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유명한 노먼 빈센트 필 목사의 영향에 주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년 시절 부모의 손에 이끌려 맨해튼에 있는 필의 마블 신학 교회에 다녔다. 필은 트럼프의 첫 번째 결혼식 주례도 봤다.

필의 교회에는 사업가와 정치인이 많이 다녔다. 그가 “자기 확신을 가진다면 신(神)이 번영을 이루어준다”는 번영신학을 설파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아버지 프레드 역시 필의 설교를 통해 자신감을 얻어 부동산 사업가로 성공했다. 그래서 자녀를 데리고 필의 교회에 다녔던 것이다.

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친 영향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글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83년 트럼프 타워 개장 직후 NYT와 인터뷰에서 “난 절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신력으로 그 어떤 역경도 극복할 수 있다”며 필에게 ‘긍정적 사고’를 배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1990년대에 여러 위기를 겪었다. 카지노가 연이어 부도났고 첫 부인 이바나와 떠들썩하게 이혼했다. 그런데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다 잘 풀릴 것”이라고 말하고 뉴욕매거진에도 “어느 때보다 잘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폴리티코는 “나쁜 일을 자신과 연관 짓지 않는 것은 트럼프식 사고방식의 특징”이라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09년 한 심리 잡지 인터뷰에서 “나는 자기 확신을 잃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 사전에 패배란 없다”고 했다. 필의 저서 ‘적극적 사고’도 언급하며 “나는 긍정적 태도의 힘을 굳건하게 믿는다”고 덧붙였다. 2015년 유세에서도 “필 목사에게 긍정적 사고방식의 저력을 배웠다”고 소개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닥쳤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어느날 갑자기 기적적으로 사라질 거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현실과 괴리된 인식이 미국의 코로나19 대응 실패,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신이 뜻한 대로 세상이 굴러갈 것이라고 믿는 극도의 자기중심적 사고, 불리한 일은 기억조차 하지 않으려고 드는 습관이 ‘트럼프식 상습적인 거짓말’의 배경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숫자를 부풀리는 것은 물론이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지지율이 4%에 불과하다” “한국은 방위비를 한 번도 낸 적이 없다”는 식의 황당한 허위 주장을 일삼는 그에게 진짜 세상보다 직접 창조한 머릿속 세상이 훨씬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5화 요약: “나는 된다” “내가 맞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고방식을 설명하는 두 가지 표어다. 평생 수없이 자기 긍정을 되풀이한 그는 이번에 백악관에 복귀하며 24시간 듣고 싶은 얘기만 들려주는 참모를 데리고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필터 버블’이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화 예고: 한국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단골 주장을 살펴봤다. 사실과 어긋나는 내용은 없는지, 이런 주장을 꾸준히 해왔는지 알아봤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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