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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0 (목)

서울대의대 교수들 “내가 알던 제자 맞나… 내 몸 아플 때 맡기기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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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 막는 지도부에 비판 성명 “의사 면허 하나로 대접 원하나”

강희경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원장, 오주환 교수, 하은진 교수, 한세원 교수 /장련성 기자, 박상훈 기자,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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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네 명이 17일 동료들에게 ‘투쟁 동참’을 요구하는 전공의·의대생 지도부를 향해 “나와 내 가족이 아플 때 이들에게 치료받게 될까 두렵다”며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서울대 의대·병원 강희경 소아청소년과 교수와 오주환 국제보건정책 교수, 하은진 중환자의학과 교수, 한세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이날 ‘복귀하는 동료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는 분들께’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의대생 및 의사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 (사직 전공의 대표) 박단의 글에는 환자에 대한 책임도, 동료에 대한 존중도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 넘친다”며 “내가 알던 후배, 제자들이 맞는지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박단씨 등 일부 사직 전공의는) 조금은 겸손하면 좋으련만, 면허 하나로 전문가 대접을 받으려는 모습도 오만하기 그지없다”며 “여러분은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로드맵도, 설득력 있는 대안도 없이 오직 탕핑(躺平·드러눕기)과 대안 없는 반대만으로 지난 1년을 보냈다”고 했다.

이들은 “여러분은 (잘못된 정부 정책의) 피해자라고 말하지만 진짜 피해자는 지난 1년간 외면당하고 치료받지 못한 환자와 그 가족들”이라며 “또 여러분은 (정부와 선배 의사들에게) 착취를 당했다고 하는데, 자영업자 100만명은 소득이 0원이다. 이들의 삶이 여러분 눈에 보이기는 하느냐”고 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실망하고, 절망하고 있다”고도 했다.

조선일보

그래픽=백형선


◇“내가 알던 제자 맞나… 내 몸 아플 때 맡기기 두려울 정도"

이날 성명에 이름을 올린 강희경 서울대 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으로도 활동했었다. 그는 “의대 2000명 증원은 환자를 위한 정책이 아니다”라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대표적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후배이자 제자인 일부 전공의와 의대생의 행태를 작심 비판하는 성명을 낸 것이다. 그는 이날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최근 건국대 의대 본과 3학년들이 수업에 복귀한 동료들에게 ‘더 이상 동료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입장문을 낸 것을 보고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지금 이 시점에 성명을 냈나.

“의대생들이 제적, 유급당할 위기에 있다. 이제 (복귀 시한이) 며칠 안 남았다. 그런데 여전히 일부 전공의·의대생은 건국대 의대 사례처럼 자기들의 ‘복귀 거부’ ‘단일대오 유지’ 의견을 동료·후배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돌아온 전공의·의대생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젠 우리들의 생각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강희경 소아청소년과 교수를 포함한 서울대 의대 교수 4명은 17일 성명에서 이탈 전공의·의대생 지도부를 향해 "여러분은 (잘못된 정부 정책의) 피해자라고 말하지만 진짜 피해자는 지난 1년간 외면당하고 치료받지 못한 환자와 그 가족들"이라고 했다. 강 교수가 지난해 10월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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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전공의·의대생 전체를 겨냥한 글인가.

“아니다. 환자와 남은 의료진에 미안해하는 전공의들도 많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투쟁,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글이다.”

-사직 전공의 대표인 박단씨도 비판했는데.

“좀 더 겸허했으면 좋겠다. 주 100시간 넘게 일하며 환자들 돌보는 교수님들과 선배 의사들을 ‘부역자’ ‘착취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특정 단체의 리더로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현재의 (전공의와 의대생) 투쟁 방식은 정의롭지 않다고 했는데.

“투쟁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걸 선택한 사람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환자는 영문도 모르고 지난 1년간 선택지 없는 불안과 공포를 겪었다.”

강 교수 등은 성명에서 “지금 우리는 환자의 불편과 공포를 무기로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고 있지 않나”라고 했다.

-환자들이 어떤 피해를 당하고 있나.

“암 환자 치료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 뇌졸중 환자도 과거보다 예후가 안 좋은 상황에서 우리 병원으로 온다고 들었다. 요즘은 대학 병원에 바로 오기 힘들어, 중환자 치료가 익숙하지 못한 병원에서 처치를 받고 온다. 빨리빨리 적절한 처치가 안 돼 예후가 나빠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전공의 과정을 착취라고 생각해본 적 있나.

“솔직히 (교수님이) 이런 것까지 시키시나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지식과 노하우를 얻었다.”

-예를 들면.

“서울대병원 소아과엔 다른 곳에서 해결할 수 없는 희귀·유전 질환 아이들이 전국에서 모인다. 스승과 선배들이 이런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는지 전공의 때 밤을 새워가며 봤었다. 그 덕에 아이들이 오면 ‘이 병은 이렇게 치료할 것’이라고 말해줄 수 있다. 이 말을 들은 부모님들은 안도한다. 혹독한 전공의 생활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들은 이날 성명에서 “여러분이 ‘착취당했다’고 말하는 3~5년의 수련 과정을 통해 여러분은 평생 사용할 의료 기술과 지식을 익히고 선배들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는다”며 “전공의 과정이 힘들다고 해서 전문의가 된 후에도 그렇게 살고 있나? 대다수는 고액 연봉을 받으며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진짜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석·박사 과정의 연구자들은 어떻나? 수년간 밤낮없이 연구실에서 살아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연구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생산직·서비스직 노동자들은 12시간 넘게 서서 일하면서도 언제 직장에서 잘릴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며 “자영업자의 75%는 월수입 100만원을 벌지 못한다. 이 중 소득이 0인 사람이 100만 명”이라고 했다. 이어 “그들의 삶이 여러분의 눈에 보이기는 하나? ‘억울하면 의대 오든지’라는 태도는 진심인가?”라며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확실한 경제적 보장을 받는 직군 중 하나”라고 했다.

-‘억울하면 의대 오든지’라는 말은 누가 했나.

“(전공의·의대생이 많이 이용하는) 메디스태프 같은 커뮤니티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던 말인 것 같다.”

-기분이 어땠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다들 공부만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고, 내부에서만 얘기를 하다 보니 자기 합리화에 빠져 자기 객관화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강 교수 등은 이날 성명에서 “지금처럼 의사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행동을 하면 사회는 결국 의사의 독점적 권한을 다른 직역에 위임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직역이란 PA(진료 지원) 간호사를 말하나.

“그렇다. 전공의 집단 사직 상황에서 진료를 계속하기 위해선 PA 간호사에게 우리 권한을 상당 부분 위임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저 역시 제 전공인 소아 콩팥 관련 업무를 경험 많은 간호사에게 물어볼 때도 있다.”

-일부 전공의는 PA 간호사의 업무 확대에 부정적인데.

“경험 많은 간호사가 의사보다 훨씬 잘하는 것도 있다.”

이들은 성명에서 “여러분은 ‘의사만 의료를 할 수 있다’는 오만한 태도로 이들(남은 교수들과 간호사들)을 폄하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며 “솔직해지자. 응급실에서 응급 처치, 정맥 주사 잡기 등의 술기를 간호사에게 배우지 않았나? 의사 면허가 의료 행위의 숙련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교수들이 ‘의료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것을 성토하는 전공의·의대생이 많은데.

“문제가 있다고 전쟁으로 해결하자는 논리다. 환자를 두고 나가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성명 낸 교수들은

17일 성명을 낸 하은진(중환자의학과)·오주환(국제보건정책)·한세원(혈액종양내과)·강희경(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모두 서울대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으로 활동했다. 강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던 비대위는 정부와 ‘의료 개혁 토론회’를 여는 등 의정 갈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의료계와 논의 없는 일방적 증원 반대, 의대 교육 정상화, 지속 가능한 의료 체계 구축 등을 주장해 왔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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