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회동설로 조희대 대법원장 공격
曺 “李 사건, 누구와 논의한 적 없다”
1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사를 나서고 있다. /장경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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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선 전 한덕수 전 총리 등 윤석열 전 대통령 측 인사들과 비밀리에 회동해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사건 처리 방향을 논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근거로 조 대법원장 사퇴와 탄핵을 주장했다. 하지만 조 대법원장은 17일 직접 “해당 사건을 한 전 총리는 물론 외부의 누구와도 논의한 바가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비밀 회동 멤버로 언급된 한 전 총리, 정상명 전 검찰총장, 김건희 여사 모친 측근인 김충식씨도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야권에선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뒤에 숨어 집권 여당이 허위 날조된 가짜 뉴스로 독립된 사법부를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조 대법원장 관련 의혹을 언급하며 “내란 특검은 제기된 충격적인 의혹에 대해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회동설은 지난 5월 친여 유튜브 열린공감TV가 최초 제기했다. 이후 지난 15일 김어준씨 유튜브에서 다시 나왔고, 다음 날인 16일 대정부 질문에서 부승찬 민주당 의원이 공식 제기했다.
부 의원은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사흘 후인 지난 4월 7일 조 대법원장이 오찬 자리에서 ‘이재명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런 뒤 이 대통령 사건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보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이후 민주당은 이 의혹을 사실인 양 확대 재생산했다.
이에 대해 조 대법원장은 입장문에서 “거론된 사람들과도 제기되고 있는 의혹과 같은 대화 또는 만남을 가진 적이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고 했다. 한 전 총리는 “조 대법원장과 회의나 식사를 한 사실이 일절 없다”고 했고, 정 전 총장도 “고교 후배지만 모르는 사이”라며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사과는 하지 않고 “떳떳하면 수사를 받으라”며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재차 요구했다.
그래픽=박상훈 |
◇유튜버가 띄우면 의원이 받아… 음모론 키우는 민주당
조희대 대법원장과 한덕수 전 총리 등의 회동설은 친여 성향 유튜버들이 주도한 뒤, 민주당이 아무런 팩트 체크도 없이 대정부 질문 등에서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이용해 퍼뜨렸다.
처음 제기한 건 지난 5월 유튜브 ‘열린공감TV’다. 이 유튜브 채널은 대법원이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고 열흘 뒤인 5월 10일, ‘취재 첩보원’의 제보라며 음성을 공개했다. 음성 속 인물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4월 4일 윤석열 탄핵 선고 끝나고 조희대, 정상명(전 검찰총장), 김충식(김건희 여사 모친의 측근), 한덕수(전 국무총리) 4명이 만나서 점심을 먹었다. 그 자리에서 조희대가 ‘이재명 사건 대법원에 올라오면 알아서 처리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다음 대통령은 내각제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몬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다만 이 유튜브는 “아직까지는 ‘주장’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라”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나흘 뒤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 음성을 틀었다. 서 의원은 “제보를 받았는데, 윤석열 탄핵 이후 정상명, 한덕수, 김충식, 조희대 4인이 회동했다고 한다”고 했다. 이에 천대엽 대법원 법원행정처장은 “처음 듣는 내용이지만, 제가 알기로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대법원장님은 그럴 분이 아니다”라고 했다. 5월 19일에는 김어준씨까지 나섰다. 유튜브 방송에서 김씨는 “이거는 큰 스캔들이라서, 이 만남 자체를 확인해야 한다”면서도 “아직 사실 확인이 안 됐다”고 했다.
이 회동설은 대선 기간과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동안 거론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을 시작한 이달 들어 다시 거론됐다. 지난 15일 김어준씨 유튜브에 출연한 김승원·김기표 의원이 회동설을 다시 제기하며 수사를 촉구했고, 김씨가 “만났다면 그 자체로 엄청나게 부적절하다”며 “사법부의 독립은 자기들이 깼다”고 했다.
다음 날인 16일 민주당 부승찬 의원은 대정부 질문에서 “헌재에서 대통령 파면 결정이 이뤄지고 3일 후인 4월 7일경에 한덕수, 정상명, 김충식, 조 대법원장이 만났다는 제보가 있었다”며 “이 모임에서 조 대법원장이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대법원에서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부 의원 말에 김민석 국무총리는 “사실이라면 국민적으로 굉장히 충격”이라고 했다.
대정부 질문 이후 민주당에선 이 회동설을 사실처럼 확산시켰다. 정청래 대표는 17일 당 회의에서 “의혹 제기가 사실이라면 조 대법원장을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조 대법원장은 어떻게 하시겠느냐”며 특검 수사를 촉구했다. 서영교 의원은 MBC에 출연해 “조 대법원장이 이 대통령 사건을 파기환송하기 1년 전 이미 윤석열을 만나 ‘이재명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대선에 못 가게 해결하겠다’고 했다”며 “이는 아주 신뢰할 만한 내용이고, 과거 보수 정권의 민정 라인이자 당시 여권의 고위직에 있던 사람에게 받은 제보”라고 했다.
민주당의 여론전에 조 대법원장 등 회동설 당사자들은 만남 자체를 부인했다. 그런데도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12·3 비상계엄 때 반대 목소리를 못 냈던 조 대법원장이 본인 의혹에 대해서는 참 빠른 입장 표명을 했다”며 “이러니 사법부 수장으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했다.
야권에선 “집권 여당이 허위 보도 시 언론을 상대로 거액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추진하면서, 이렇게 확인도 안 된 ‘지라시(정보지)’ 수준의 주장을 할 수 있냐”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 김남희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사법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해서 정치권력과 다수결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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