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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징역 15년에 ‘아리셀 화재’ 대표 휘청... 부축한 아들도 ’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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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아리셀 모회사 에코넥스 박순관 대표가 작년 6월 25일 경기 화성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현장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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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재해 발생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비춰볼 때, 경영책임자에게 무거운 형사책임을 부과하는 건 응당한 결과다.”

    23일 오후 수원지법 201호 법정. 작년 6월 24일 23명의 사망자가 나온 경기 화성 배터리 업체 ‘아리셀’ 화재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을 1년 동안 심리한 재판장(고권홍 부장판사)은 1시간 50분 동안 선고를 이어갔다.

    박 대표에게 “경영 책임이 인정된다” “안전 관리시스템 구축 책임이 있다”는 재판장의 유죄 판단이 이어지자, 감색 정장을 입은 박 대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아들이자 회사 경영 책임자였던 박중언 아리셀 운영총괄본부장은 이따금씩 양 손으로 얼굴을 비비거나, 머리를 쥐어뜯기도 했다. 방청석에서는 “에휴” 하는 유족들의 탄식소리와 ‘훌쩍’하며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잇달아 나왔다.

    이날 고 재판장은 “이 사건은 23명이 사망하고, 9명이 상해를 입어 범행으로 인한 결과가 매우 중하다”며 박 대표와 박 본부장에게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 형량이 선고된 것이다. 그동안 중처법으로 선고된 실형 중 가장 형량이 높았던 건 징역 2년이었다. 피고인석에 서서 재판장의 주문 선고를 듣던 박 대표는 깜짝 놀란 듯 순간 휘청하며 중심을 잃었고, 박 본부장이 그를 부축했다. 보석 상태로 재판받던 박 대표는 곧바로 구속돼 법정 밖으로 끌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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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6월 24일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일차전지 제조 공장 아리셀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소방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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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대표 등은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와 관련해 평소 유해·위험 요인 점검을 이행하지 않고, 중대재해 발생 대비 매뉴얼을 구비하지 않은 혐의로 작년 9월 재판에 넘겨졌다. 박 본부장은 또 비상구를 설치하지 않고, 화재 발생에 대비한 안전교육과 소방훈련 등을 실시하지 않는 등 안전관리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도 있다.

    검찰에 따르면 아리셀은 매년 적자가 발생하자, 무리한 생산을 감행해오면서 안전·보건 예산과 담당 인력을 줄이고, 비용 절감을 위해 파견업체로부터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를 불법 파견받아 안전 교육 없이 고위험 공정인 전지 생산에 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아리셀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전지 발열 검사를 생략한 데다, 여러 전지를 한곳에 모아 뒀다가 전지가 연쇄 폭발하며 화재가 발생했고, 대규모 인명 피해를 불러왔다고 봤다. 아리셀은 생산 편의를 위해 방화구획 벽체를 임의로 부수고, 대피 경로에는 가벽을 설치하는 등 허가 없이 구조를 변경하기도 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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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셀 모회사 '에코넥스'의 박순관 대표(가운데)가 작년 6월25일 오후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 현장에서 공식 사과문 발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왼쪽은 박중언 아리셀총괄본부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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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재판장은 이번 사고를 두고 “언제 터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던 예고된 인재”라면서 “이면에는 기업의 생산량 증대에 따른 이윤 극대화를 앞세워 노동장의 안전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방치되고 있는 우리 산업 구조의 현실과 일용직·파견직 등 불안정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의 실태가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고도 했다.

    이날 고 재판장은 “피해자들의 유족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이 극심하고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사망한 피해자들 대부분이 파견근로자들인데, 피고인들이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해 급작스럽게 전지 생산량을 증가시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판장은 또 “사망한 피해자들이 평소 제대로된 전지 폭발의 위험성에 대한 교육과 화재 대피 교육을 받았더라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대부분 피해자들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골든 타임을 놓쳤고, 비상구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비상구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장애물들이 가로막고 있었다”고 했다.

    재판장은 “중처법이 전제하고 있는 건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권한과 책임이 있음에도 이를 방치한 대표이사와 같은 경영책임자 등에게도 산재 발생에 대한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경영책임자 등에게 무거운 형사책임을 부가하는 건 응당한 결과이고, 자기책임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박 대표는 아리셀의 실질적 경영은 박 본부장이 했다며 중처법 위반 혐의 등을 부인해왔다. 그러나 이날 재판장은 박 대표가 경영책임자였음을 인정하면서 “박중언에게 영업 현황을 보고하도록 지시하며 기업 매출을 증가시키라는 지시는 강조해 반복하는 반면, 근로자들의 안전에 유의하라는 지시는 거의 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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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터리 폭발 사고로 23명이 희생된 아리셀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23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유가족과 대책위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참사 당시 한국인 5명,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으로 총 23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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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계에선 중처법 입법 취치를 고려한 ‘징벌적 중형’이 내려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계속되는 산재 사고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 15일 산재로 연간 3명 이상 사망 사고가 발생한 법인·공공기관에 대해 영업이익의 5% 이내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노동안전 종합대책’도 발표했다.

    노동계에선 경영책임자에게 엄중 처벌을 통해 중처법 입법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법 시행 후 올해까지 경영책임자에 대한 실형 선고는 5건에 그쳤기 때문이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법원에서 중형을 선고한 만큼, 이전과 달리 중처법 위반 범죄를 크게 보고 있다는 것”이라며 “시민과 근로자의 생명 및 신체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법 시행 취지가 안착하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경영자에게 불리한 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수원=김수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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