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표적치료 ‘칼소디’ 식약처 허가
코아스템·지뉴브등 국내기업도 도전장
코아스템·지뉴브등 국내기업도 도전장
영국의 세계적인 물리학자이자 2018년 타계한 스티븐 호킹 박사는 21세에 루게릭병을 진단 받았다. 사진은 지난 2014년 12월 영국 런던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호킹. [연합뉴스] |
루게릭병(ALS·근위축성측삭경화증) 치료제 개발의 새 장이 열렸다. 미국 바이오젠이 개발한 신약 ‘칼소디’가 올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으면서 한국 환자들도 세계 첫 유전자 표적 루게릭병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어 수년간 생존 연장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환자들에게 20년 만에 등장한 새로운 치료 옵션이다.
27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바이오젠은 루게릭병 치료제 칼소디에 대해 지난 8월 식약처 품목허가를 획득하고 환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칼소디는 루게릭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 중 하나인 SOD1 단백질 발현을 억제하고 세포 내 축적을 감소시켜 운동신경세포 손상을 지연시키는 최초의 치료제다. 기존 치료제들이 신경세포 손상을 완전히 막지 못한 채 ‘진행 속도 완화’ 수준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질병의 근본 원인을 직접 차단하는 접근법이다.
루게릭병은 운동신경세포의 선택적 사멸로 인해 서서히 팔다리가 쇠약해지다가 결국 호흡근까지 마비돼 수년 내 사망에 이르는 운동질환이다. 국내 역학연구에 따르면 국내 루게릭병 환자의 3년 생존율은 약 47.9%, 5년 생존율은 약 36.3%로 알려져 있다. 김승현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루게릭병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퇴행성 질환은 원인 치료제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한계였다”며 “칼소디는 유전자 변이를 직접 표적하는 치료제라는 점에서 루게릭병 치료의 방향성을 바꿀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루게릭병 신약 개발은 제약업계에서도 가장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희귀질환의 특성상 환자 수가 적고 병의 진행이 빨라 임상 설계가 어렵다. 증상 악화를 얼마나 늦췄는지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평가 지표도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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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루게릭병 치료제는 1995년 사노피의 ‘리루텍’ 이후 20년 넘게 신약이 나오지 않았다. 그 뒤 미쓰비시다나베파마의 ‘라디카바’가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지만, 이 역시 항산화 작용을 통한 증상 완화에 그쳤다. 미국 아밀릭스파마슈티컬스의 ‘렐리브리오’는 2022년 FDA에서 조건부 승인을 받으며 주목받았지만, 3상 임상에서 주요 평가 지표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지난해 시장에서 철수됐다.
김 교수는 “루게릭병 같은 퇴행성 질환을 완치한다는 것은 60세 노인을 20세 청년으로 되돌리는 일과 같다”며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증상 악화를 멈추게 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치료”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희귀난치성 질환의 경우 FDA나 유럽의약품청(EMA)도 바이오마커 개선이나 생존율 향상 등 의미 있는 결과가 있으면 보다 유연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추세”라며 “루게릭병도 조기 진단과 조기 투여가 가능해지면 치료 효과가 더 오래 지속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코아스템켐온이 가장 앞서 있다. 자가골수유래 줄기세포를 활용한 ‘뉴로나타-알’은 2014년 식약처에서 조건부 허가를 받은 후 400명 이상 환자에게 투여됐다. 하지만 초기 임상 3상에서는 유의미한 통계적 차이를 확보하지 못했다. 코아스템켐온은 이후 척수 내 투여 안정성을 개선한 현탁화제 변경과 공정 최적화를 거쳐 한국과 미국에서 3상을 다시 진행 중이며, 내년 상반기 FDA 생물의약품허가(BLA) 신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지뉴브는 인공지능(AI) 플랫폼으로 발굴한 저분자 후보 물질 ‘SNR1611’을 전임상 단계에서 연구 중이고, 피알지에스앤텍은 SOD1 단백질 응집을 억제하는 신규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루게릭병처럼 환자가 적은 희귀질환은 임상과 사업화 모두 난도가 높지만, 칼소디의 허가를 계기로 글로벌 제약사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들의 연구 동력도 커질 것”이라며 “유전자치료제와 줄기세포치료제 등 다양한 접근이 병행되면 향후 몇 년 내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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