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앞두고 각종 집회로 골머리
28일 경북 경주 경주화백컨벤션센터 앞에서 한 남성이 ‘1인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출동하고 있다. 이 남성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그린 현수막을 들고 “트럼프가 세계 무역 질서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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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세계 무역 질서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기습 시위를 이어가겠습니다.”
28일 오후 경북 경주시 화백컨벤션센터(HICO)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모습이 담긴 현수막을 펼친 한 남성이 이렇게 외쳤다. HICO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주 행사장이다. 도로 곳곳엔 철제 울타리가 설치됐고, 정상회의장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경광등을 켜고 달리는 경찰 순찰차가 보였다.
기습 시위에 당황한 경찰이 달려가 “이곳은 보안 구역이라 집회를 할 수 없다”고 외쳤다. 경찰이 5분 정도 설득한 끝에 이 남성은 물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 등 해외 정상이 속속 도착할 텐데 이에 맞춰 집회·시위를 예고한 단체가 많다”며 “돌발 상황을 막기 위해 비상근무 중”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29일)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30일) 방한을 앞두고 APEC 정상회의 현장이 각종 단체의 ‘시위 전선(戰線)’으로 변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9일 경주 보문단지 앞에선 APEC 개최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열린다. 구(舊) 경주역사 앞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와 3500억달러 대미 투자 요구에 항의하는 집회도 열린다. 이런 집회는 여차하면 반미 시위로 번질 수 있다고 경찰 당국은 보고 있다.
오후 3시엔 인근에서 우파 단체 자유대학이 ‘윤어게인’(윤석열 전 대통령 복귀) 등을 주장하는 집회를 연다. 이 단체는 그간 서울 명동 등에서 반중 집회를 열어왔다. APEC 정상회의의 관문 공항인 부산의 김해공항 인근에선 29일 오후 공항 노조가 노동·불공정 계약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를 한다. 전국공항노동자연대도 이날부터 무기한 전면 파업에 들어가고, 김해공항 국내선 청사 택시 승강장 앞에서 결의 대회를 연다. 이들의 집회·시위도 APEC 참석차 입국하는 각국 정상 경호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경찰은 경계 수위를 높였다.
APEC과 같은 국제 다자 회의는 세계 주요 도시를 ‘시위의 전장’으로 만들어왔다. 지난 2023년 11월 APEC이 열린 미 샌프란시스코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대가 출근 시간에 샌프란시스코와 근처 위성 도시를 잇는 다리를 봉쇄했다. 시위대는 각국 정상이 모이는 대형 행사 기간에 자기들 주장을 널리 알리려 했다. 이들이 차량을 통제해 일대 도로가 막히자 경찰은 80여 명을 체포했다. 지난 2010년 G20 정상회의 때도 서울에서 대규모 도심 시위가 열려 차벽·살수차가 곳곳에 설치됐다.
경찰은 이번 APEC 기간에도 사고·테러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경주 전역에 경찰 기동대 등을 배치했다. 경찰은 집회 신고 단계에서 혐오 표현이 포함되거나 신고 경로 이탈이 예고되면, 집시법에 따라 집회 시간·장소·방법과 동선을 조정·축소하는 ‘제한 통고’를 적극적으로 할 방침이다. 온라인에서는 ‘허위 정보 대응 TF’를 가동해 선동성 게시물과 허위 사실 유포를 살핀다.
일부 단체는 “최근 경찰이 유독 반중 집회에만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APEC 기간에도 특정 단체의 활동만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9일 국무회의에서, 서울 명동 일대에서 벌어지는 반중 시위에 대해 “그게 무슨 표현의 자유냐. ‘깽판’이다”라고 했다. 같은 달 19일 김민석 국무총리도 “(반중 집회에) 경찰은 필요시 강력하게 조치하라”고 했다.
[구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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