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티코 “나토 등 동맹국 안보에 영향”
러와 START 조약 내년 2월 만료…부정적 여파 우려
네바다주 등 과거 대기권 핵시험 지역 반발도 예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마친 30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 착륙한 에어포스원에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쓴 채 취재진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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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 중국을 거론하며 다른 나라들처럼 미국도 핵무기 시험을 재개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을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30일(현지시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시한 핵시험이 국내와 동맹국들의 반발로 실제 재개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핵 전문가들은 현대의 미국은 실제 시험 없이도 충분히 억지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도입된 규정에 따라 36개월 내 핵시험을 재개할 능력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핵시험을 당장 재개하지 않더라도 준비태세는 언제든 갖춰져 있다는 지적이다.
미 싱크탱크 핵위협방지구상(NTI)의 폴 딘 부대표는 “정부는 이미 핵무기가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음을 정기적으로 인증하고 있다”며 “재시험은 불필요하다. 한 번 시험하는 데 1억4000만달러가 든다”고 설명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도 핵무기 시험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992년 이후 핵시험을 하지 않은 미국이 러시아의 핵 전력 증강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정면 대응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다른 나라들의 시험 프로그램으로 인해 나는 전쟁부(국방부)에 동등한 기준으로 우리의 핵무기 시험을 시작하도록 지시했다”며 “이 절차는 즉시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엄청난 파괴력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면서 “(핵 전력에서) 러시아가 2위, 중국이 한참 처진 3위지만 5년 안에 따라잡을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와 중국 때문에 핵실험을 재개한다는 취지다.
트럼프, 33년 만에 “핵실험 재개” 지시…러 ““美가 하면 우리도…최근 실험은 핵시험 아냐”
지난 2018년 7월 러시아 국방부가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공개한 러시아의 포세이돈 핵 탑재 잠수함. [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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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핵시험 재개에 나선 것은 최근 러시아가 신형 핵무기 시험에 잇따라 나서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9일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원자력 추진 어뢰 ‘포세이돈’과 관련된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그는 대륙간탄도미사일 ‘사르마트’가 곧 실전 배치될 예정이라고도 했다. 지난 26일엔 순항미사일 ‘부레베스트니크’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도 밝혔다.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이 미사일은 초소형 원자로의 에너지로 가열·압축한 공기를 분사해 비행한다. 지난 22일엔 육·해·공 핵전력 훈련도 감독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 [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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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러시아는 최근 진행한 무기 시험은 핵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누구든 핵시험을 하면 러시아도 하겠다고 경고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누군가 (핵시험) 유예를 어기면 러시아는 그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면서도 “지금까지 우리는 누군가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레베스트니크 실험을 언급한 것이라면, 그것은 절대 핵시험이 아니다”고 말했다.
美 대기권 핵시험 여파 여전…네바다·애리조나 등 반발 예상
지난 1955년 3월 미국 네바다주 유카 플랫츠 인근 네바다 실험장에서 지하 원자력 실험이 진행된 모습.[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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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포괄적핵시험금지조약(CTBT)에 서명했지만 비준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 핵시험을 재개하는 데 국제적·국내적 제약은 없다.
하지만 1945~1980년 이어진 대기권 핵시험의 피해가 아직도 미국 서부 지역에는 존재하고 있어서 국내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폴리티코는 “실제 애리조나·유타·네바다·뉴멕시코 등지 주민 수천명에서 암 등 방사능 질병 환자들이 나오고 있다”며 “1980년 이후 실험이 주로 지하 핵시험으로 전환됐지만, 이 역시 공기·지반 오염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특히 네카자주의 경우 과거 수백건의 대기권 핵시험이 진행됐다. 이에 네바다주 의회는 지난 5월 핵시험 금지 유지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재키 로즌(네바다주·민주) 상원의원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연쇄 반응”이라며 “이번 결정은 자국민을 죽이고 오염시킬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1990년 이후 핵시험 국가 北이 유일…NATO 안보, 러 START 조약 위태로울 수도
지난 1957년 6월 미국 네바다주 핵시험장에서 발생한 시험 폭발로 버섯 구름이 솟아오르고 있다. [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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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시험을 재개하려면 동맹국들의 반발도 감수해야하는 장애물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이 글로벌 비핵화 원칙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동맹국들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수 있어서다. 또 미국이 러시아와 체결한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이 내년 2월 만료를 앞두고 있어서 이 같은 핵시험 재개는 조약을 연장하는데 어려움을 줄 수 있다.
폴리티코는 “1990년대 이후 북한만이 지난 2017년부터 실제 핵시험을 감행했다. 이번 조치는 미국이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라며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동맹국의 안보 신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내년 만료되는 미·러 핵감축조약(New START) 갱신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핵시험 재개는 협상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딘 부대표는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 미국조차 이번 결정을 해석하기 어렵다”며 “잘못 해석될 경우 새로운 군비경쟁 압력을 불러오고, 급속히 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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