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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천일염은 자연의 예술…보존·육성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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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대한민국의 천일염은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자산입니다. 위생 관리와 품질 개선, 후계자 양성에 투자해 대한민국의 대표 명품 산업으로 키워야 합니다."

    전남 신안군 증도 태평염전의 박형기 소금장인(사진)은 4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소금을 만들어왔다.

    3대째 염부로 태어나 가업을 잇고, 이제는 아들과 함께 4대째 염전을 지키고 있다. 박 장인은 신안 증도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바닷물이 드나드는 소금밭은 장인의 놀이터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업을 잇겠다고 결심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소금장인의 명맥을 지켰다.

    197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염전 일에 뛰어든 그는 40여 년 동안 하루도 햇빛과 바람을 등진 적이 없다. 여름엔 땀을 흘리며 소금을 걷고, 겨울엔 토판을 고치며 다음 해를 준비했다. 그는 "소금은 자연이 만드는 예술품이다. 인간이 할 일은 그 과정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박 장인은 단순히 염부로 머무르지 않았다. 품질 향상과 산업 체계화를 위해 노력하며 국내 천일염의 명품화를 이끌었다. 그는 국내 유일의 소금 관련 연구기관인 국립목포대 천일염생명과학연구소와 협력해 품질 실험을 이어왔고, 천연 미네랄 함량이 높은 토판 천일염 생산 공정을 표준화하며 품질 관리 체계를 세웠다.

    박 장인은 약 11년 동안 신안천일염생산자연합회 회장을 맡아 전국 950여 명의 생산자를 이끌었다. 그는 가격안정제 도입과 생산자 처우 개선, 유통 구조 개혁을 주장하며 천일염 산업의 제도화를 촉구했다.

    박 장인의 염전이 위치한 태평염전은 2021년 장애인 강제 노동 사건 이후 심각한 이미지 훼손을 입었다. 태평염전은 여러 사업자에게 염전을 나누어 빌려주는데, 당시 사건은 사업자 1명으로 인해 발생했다.

    태평염전은 즉시 해당 사업자와 계약을 해지했고 수사기관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염전 노예'라는 오명은 여전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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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신안 증도 태평염전에서 작업자가 소금을 수레에 싣고 있다. 신안 송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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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를 회상한 박 장인은 "그 일은 염전 관계자 모두의 부끄러움이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조상들이 수백 년간 지켜온 염전 전체의 역사와 가치를 지워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논란의 여파는 국내를 넘어 해외 거래에도 미쳤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이 올해 4월 태평염전산 천일염을 '강제 노동 생산품'으로 분류해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후 대기업 등 주요 거래처들도 납품을 중단하거나 검수를 강화하면서 판매량이 줄었고, 수개월간 손실 규모는 4억~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태평염전이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해제를 자진 신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 장인은 "현장 생산자들과 충분히 상의되지 않은 채 결정이 내려졌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국가등록문화유산이란 자부심을 갖고 일하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유산 등록 해제는 사라져가는 염전의 현실을 외면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박 장인은 "강제 노동 사건의 여파로 이미지가 훼손된 건 사실이지만 그게 태평염전 전체의 역사와 가치까지 지워선 안된다"며 "진짜 문제는 천일염 산업을 지키고 발전시킬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결국 이런 결정이 소금 산업을 전반적으로 위축시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신안 송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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