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 판매 행사 1회에 5억 매출
“내가 상상한 만큼 현실이 돼”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 늘어선 웹소설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팬덤의 모습. 전시를 보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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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입구엔 9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아침마다 긴 줄이 늘어섰다. 돗자리, 텐트, 담요 등으로 무장한 이들은 카카오페이지의 인기 웹소설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괴담출근)의 팬덤. 소설 속 장면들을 실제로 구현한 전시를 보고 굿즈를 사기 위해 전날 밤부터 줄을 서는 등 진풍경이 벌어졌다. 최근 막을 내린 이 전시의 일평균 관람객은 2000명. 팬들의 손마다 굿즈를 꽉꽉 채운 여행용 캐리어가 들려 있었다. 현재 잠실 롯데월드에서 진행 중인 인기 네이버 웹툰 ‘전지적 독자 시점’ 전시에도 팬덤의 ‘성지순례’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 전시에서도 한정판 굿즈를 사기 위한 ‘오픈런’이 생겼다.
웹소설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포스터(왼쪽)와 주인공을 따라 하는 팬. 그립톡, 인형, 사원증 등 소설과 포스터에 등장하는 소품들을 직접 제작했다./ 카카오페이지·독자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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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웹소설 팬덤이 한국 콘텐츠 시장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콘텐츠에 지갑을 여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만화와 소설을 보기 위해 결제하는 건 기본이고, 각종 전시회와 굿즈 등 부가 상품에도 아낌없이 돈을 쓰고 있다. 괴담출근은 첫 공식 굿즈를 발매하자마자 1만 세트를 팔며 매출 5억원을 올렸다. 같은 작가의 전작 ‘데뷔 못하면 죽는 병’의 팝업스토어에도 2만명이 다녀갔고, 1인당 평균 50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전시에서 만난 팬들은 “소설 속 주인공을 위해 카페를 대관해 생일 파티를 열어 줬다” “그동안 굿즈를 안 팔아서 하다 하다 직접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적극적인 소비층 덕에 웹툰·웹소설 시장 규모는 3조5390억원에 달한다.(한국콘텐츠진흥원) 이는 작년 한 해 영화 티켓 매출을 집계한 박스오피스 매출(1조1945억원)의 3배 규모다.
웹소설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팬덤이 굿즈를 사고 있다./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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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웹소설 팬덤은 기존 K팝 팬덤과는 양상이 다르다. K팝 팬덤은 팬 사인회에서 연예인을 직접 만나기 위해 CD를 수십 장 구매하는 등 돈을 쓴다. 하지만 웹툰·웹소설 팬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사랑하는 데 돈을 쓴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연차를 내고 온 회사원 송동은(22)씨는 “실물이 없기 때문에 더 사랑하는 것”이라며 “사람에게 실망할 일이 없고, 내가 상상하는 만큼 현실이 된다”고 말했다. 전날 밤 11시부터 돗자리를 깔고 ‘오픈런’했다는 대학생 김나영(20)씨는 지금까지 이 소설에 쓴 돈만 800만원쯤이라고 했다. 김씨는 “내 최애(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는 현실 아이돌과 달리 논란이 터질 일도 없고 군대도 안 간다”며 “스토리에 감정을 이입하다 보면 현실보다 더 몰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사랑을 ‘리스크 제로의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불확실성을 피하고 예측 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Z세대의 콘텐츠 사랑 문법이라는 것이다. 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K팝 스타는 언젠가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웹툰·웹소설 주인공은 늙지도 변하지도 않는 인물”이라며 “서사에 몰입하고 팬덤 안에서 끝없이 해석을 공유하고 세계관 속에서 함께 살아 숨 쉬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월드에서 열리는 웹툰 '전지적 독자시점' 전시회 포스터/롯데월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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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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