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0% 시대’ 오는데
한국 농가 지탱하는 것은
쌀·콩 아닌 보조금
보호와 지원에 매달려
발전 이룬 사례는 없다
경쟁력 키우는 게 살길
작년 기준으로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농림축산업의 비율은 GDP의 1.3%, 인구의 3.9%로 줄었다. 그나마 50.8%가 70세 이상, 60대가 33.1%로 합치면 84%다. 농가 중 쌀 생산 농가는 37.4%이지만 농업 생산 중 쌀의 비율은 금액으로 13.1%밖에 되지 않는다. GDP에서 차지하는 쌀의 비율은 0.3% 정도다.
농가 소득 구조를 보자. 2024년 농가 평균 소득은 연 5060만원인데 농업 소득은 958만원으로 19%, 농외 소득이 2015만원으로 40%, 보조금 등 이전 소득이 1824만원으로 36%나 된다. 쌀이 농가 소득의 2.5% 정도라는 계산이다.
FAO(세계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1961~2023년 기준 세계 쌀 생산량은 2.16억톤에서 8억톤으로, 밀은 2.22억톤에서 7.99억톤으로, 옥수수가 2.05억톤에서 12.42억 톤으로 각각 3.7배, 3.6배, 6.1배 늘었다. 콩은 0.27억톤에서 3.71억톤으로 13.8배 늘었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은 각각 2.5배, 3.3배, 3.1배, 2.4배 늘었고, 곡물 재배 면적은 다 합쳐서 6.5억ha에서 7.4억ha로 14% 늘었을 뿐이다. 2023년 기준 전 세계의 경작 가능 면적 13.8억ha 중 11.7%인 1.62억ha는 휴경했다. 우리도 5%를 휴경했다.
같은 기간 세계 인구는 2.6배 늘었다. 이렇게 인구보다 곡물 생산이 더 빨리 증가했음에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사료용, 연료용으로 소비됐기 때문이다. 1970년 대비 2023년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소비량이 소고기가 1.2kg에서 14.7kg으로, 돼지고기가 2.6kg에서 29.6kg으로, 닭고기가 1.4kg에서 16.2kg으로 늘었고, 달걀은 77개에서 331개로, 우유는 1.6kg에서 83.9kg으로 늘었다. 치즈 소비는 22톤에서 19.3만톤으로 8800배나 늘었다. 국산이라도 거의 다 수입 사료로 생산됐다고 봐도 된다. 소는 풀을 좋아해서 곡식을 많이 먹이지 않지만 닭고기, 돼지고기 1㎏을 생산하려면 약 2㎏, 4㎏ 수준의 옥수수와 대두박이 사료로 투입돼야 한다. 세계적으로 옥수수는 55% 내외, 콩은 70% 이상이 사료용으로 쓰인다.
결정적인 것은 중국의 소득 수준 상승과 축산물 소비 증가다. 중국은 1996년 콩 순수입국이 된 이후 지금은 연 1억톤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미국 콩을 안 사주겠다고 하는 것이 관세 협상의 무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옥수수는 2009년에 순수입국이 됐는데 최근 2340만톤을 수입했다.
미국에서는 옥수수로 에탄올을 만들어 휘발유와 섞어서 연료로 쓰는데 2023년에 1.4억톤 정도의 옥수수를 썼고, 브라질에서는 콩기름으로 바이오디젤을 만드는 데 2023년 콩 2590만톤을 썼다고 한다.
쌀과 콩 등 극히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우리나라는 모든 농산물이 수입 자동승인 품목이다. 관세에 의해 보호해 왔지만 점차 삭감되고 있고 머지않아 모두 무관세가 될 것이다. 한미 FTA에 의한 농산물 관세 삭감 스케줄을 보자. 참깨는 2011년 630% 관세(당시 국내 가격이 국제 가격의 7.3배 비쌌다) 부과를 시작으로 15년 동안 매년 42%p씩 삭감하여 지금은 42%이고 내년에는 0%가 된다. 고추, 마늘, 양파, 땅콩 등도 모두 2011년 시작할 때의 관세율이 달랐지만 매년 1/15씩 삭감돼 내년에는 관세가 0%가 된다.
귤도 144%에서 시작, 매년 9.5%씩 삭감한 끝에 내년에 무관세가 될 것이다. 우유도 내년에 무관세가 된다. 돼지고기, 닭고기는 이미 2021년, 2023년에 관세가 없어졌고 2.6%, 1.8% 남아 있는 쇠고기와 달걀도 내년에 무관세가 된다. 후지사과와 동양배만 현재 13.5% 관세가 남아 있는데 매년 2.25%씩 삭감돼 2031년 철폐될 것이다. 이게 마지막이다.
모든 농어민이 당장 현실로 닥쳐온 “관세 0%의 수입” 상황에 견디기 위해 경쟁력 제고에 노력하고 있다. 미미하지만 수출을 늘려 가고 있는 품목들도 있다. 지난 11월 수출 10억불을 넘어섰다는 김이 대표적이고 딸기, 배 등이 금액은 크지는 않으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경쟁을 피하고 보호와 지원에 매달려 성장, 발전을 이룬 사례는 업종을 불문하고 동서고금에 없다. 경쟁을 피하느라고 쓰는 돈과 에너지를 경쟁력 키우는 데 써야 한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먹거리는 서로 경쟁한다. 1970년 쌀을 1인당 136.4㎏ 먹던 국민이 작년엔 55.8㎏밖에 먹지 않았다. 이 추세를 보호와 지원으로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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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원 퇴계학연구원 이사장·前 청와대 경제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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