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방일영국악상 시상식
제32회 방일영국악상 수상자인 정순임 명창(앞줄 가운데)이 18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자신이 보유한 무형유산 ‘흥보가’ 공연을 제자들과 함께 선보이고 있다. /남강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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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을 타거들랑은, 아무것도 나오지를 말고, 쌀밥 한 통만 나오너라~!”
18일 오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제32회 방일영국악상 시상식. 수상자 정순임(83) 명창이 쩌렁쩌렁한 소리를 내자 현장은 순식간에 박을 타는 흥보의 집 마당으로 변모했다. 정 명창이 2020년 예능 보유자로 지정된 국가문화유산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중 ‘박 타는 대목’을 선보인 것. 내빈석에선 참지 못한 흥이 “얼쑤!” 추임새로 흘렀다. 시상식 진행을 맡은 김성녀 전 국립창극단 예술 감독은 “너름새와 발림, 소리의 3박자가 딱 맞는 정말 아름답고 든든한 소리”라고 했다.
1994년 ‘국악의 해’를 맞아 제정한 방일영국악상은 일생을 국악 전승과 발전에 힘쓴 명인과 명창에게 수여하는 국내 최고 권위 국악상이다. 정순임 명창은 수상 소감에서 “일평생 판소리만 알며 살았고, 윗대부터 이은 소리 길을 죽자사자 지켰다. 이토록 좋은 상이 정말 꿈같고 감격스럽다”며 “남은 인생 제자를 많이 양성해 우리나라 구석구석 판소리를 보급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그가 “제가 말을 잘 못 한다. 차라리 소리가 편하다”며 수줍게 웃자 장내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날 정 명창은 부상으로 상금 8000만원을 받았다.
정 명창은 영·호남을 오가며 국악계 동편과 서편의 소리를 두루 익힌 대가다. 전남 목포 출생이지만 20대 중반부터 국악 불모지라던 경주에 정착해 지역 국악 보급에 힘써 왔다. 1996년 동국대 한국음악과 출강을 시작으로 국악 후학들을 이끌기도 했다. 그렇게 자라난 제자들이 이날 정 명창과 함께 민요 ‘성주풀이’와 ‘진도아리랑’으로 축하 무대를 꾸렸다.
정 명창은 ‘4대째 판소리 명가’를 이어왔다.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는 보존 가치가 높은 전통 예술 분야를 3대 이상 지킨 공로로 정 명창 집안을 ‘전통 예술 판소리 명가 1호’로 지정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정 명창의 모친이자 경북 무형문화재 가야금병창 예능 보유자였던 장월중선 명창을 기리는 ‘장월중선 명창 대회 후원회’ 회원들과, 정 명창이 흥보가를 사사한 스승 박송희 명창의 유족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정 명창은 특히 “박송희 스승님도 방일영국악상 (17회) 수상자다. 스승께 배운 소리 한 소절을 기쁘게 들려드리겠다”며 ‘단가 인생 백년’을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방일영국악상 심사위원장인 윤미용 전 국립국악원장은 이날 “심사위에서 정 명창이 거론되자마자 ‘방일영국악상 취지에 가장 잘 맞는 수상자’란 반응이 나왔다. 굳건한 동편제로도, 구슬픈 서편제로도 흥보가를 다룰 수 있는 특출난 예인”이라고 했다. 축사를 맡은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는 “일상에서 지켜본 정 명창은 소녀처럼 맑고, 무대 위에 올라야만 젊음을 유지하는 소리꾼이다. 그 열정과 순수한 울림이 한반도 전체로 퍼져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역대 수상자인 이생강(12회)·이재숙(24회)·정대석(30회)·이영희(31회) 명인, 김일구(28회) 명창과 그의 부인 김영자 명창, 심사위원 김영재(22회 방일영국악상 수상자) 명인, 김영운 전 국립국악원장, 임미선 한국국악학회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내빈으로 이종식 전 국회의원, 조연흥 전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 김중채 임방울국악진흥회 이사장, 김종규 전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이원식 전 경주시장, 포항 무상사의 마웅 주지 스님, 김수미 명창, 정의진 명창, 이영선 통일과나눔 이사장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방준오 조선일보 사장, 변용식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 김창기 조선일보미디어연구소 이사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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