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 가능’ 발언과 관련해 지난 16일 중·일 국장급 대화가 열렸다. 교도통신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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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 가능’ 발언과 관련한 중국 정부의 방일 여행객 차단 조처가 즉각 영향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9일 “중국 정부가 관·민을 총동원해 일본을 경제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며 “대만 통일이라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강한 의지가 관·민 차원의 대일 조처를 가속화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나온 뒤 일주일여 만에 동시다발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 14일 자국민에게 일본 여행을 자제하도록 했다. ‘당부’의 모양새를 취했지만, 관련 기업과 정부 부처를 동원한 사실상 ‘지시’ 조처에 가까운 상황이다. 16일에는 중국 교육부와 문화여유부(문화관광부)에 일본 유학과 여행을 자제하도록 했다. 또 시진핑 정부는 중국 극장에 상영 예정인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개봉 차단 등 문화 분야에도 통제 조처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지침에 발맞춰 주요 항공사들이 일본행 항공편을 취소하거나 아예 운항 중단에 나섰다. 국영 대기업을 포함한 여행사들은 일본 여행 신규 예약을 중단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이 관·민을 동원한 ‘카드’를 꺼내 든 배경에는 대만 무력 통일의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으며, 이 문제에 외부세력 개입을 단호히 반대해온 시진핑 주석의 의지가 담겼다”며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짚었다.
중국 정부의 조처는 일본 현지에서 즉각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다. 일본 지역방송인 시비시(CBC)티브이는 “일·중 긴장 고조로 일본 도카이지방 호텔에 영향이 미치고 있다”며 아이치현 가마고오리시 한 호텔의 사례를 전했다.
방송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 발언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 조처가 발표된 뒤 이 호텔에 중국 여행사로부터 여행 취소 요청이 들어온 게 11월에만 1천명분에 이른다. 이 지역 호텔 대표는 2012년 중·일 간 센카쿠 열도 갈등이 있었던 2012년 당시를 언급하며 “당시에도 예약이 확정되고 최종 명단이 도착한 뒤에 취소해달라는 요구는 없었다”며 “지금은 취소 수수료까지 면제해달라는 요구를 해오는데 솔직히 난처하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 여행사 쪽은 ‘중국 정부의 요청'이라는 점을 들어 취소 수수료도 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일본 여행 업계 쪽에서는 이런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내년 2월 중국 관광객들이 평소의 2∼3배 몰리는 춘절(중국 설 연휴) 기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18일 보고서에서 “중국 정부의 ‘일본 여행 자제 방침’이 1년간 유지될 경우, 일본 내 관광 소비가 1조7900억엔(16조9천억원)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0.29%를 하락시킬 수 있는 규모다. 일본 관광국에 따르면, 올해 1∼9월 일본을 찾은 중국 관광객이 748만명에 이른다. 또 지난해 일본 내 중국 유학생은 12만3485명으로 전체 유학생의 36.7% 규모다.
상황이 여행객이나 유학생 등을 넘어 확산할 여지도 있다. 중국은 2010년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에서 일본과 영토 갈등이 빚어졌을 때, 희토류 수출 통관 절차를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외교 문제에 대해 경제 보복으로 대응을 해왔다. 2012년 일본이 센카쿠 열도 국유화를 선언하자 자국민의 일본 방문을 통제해 1년간 줄어든 중국인(홍콩 포함) 일본 관광객이 전년 대비 25.1%에 이르렀던 것으로 집계됐다. 당시 중국에서는 이에 그치지 않고 격렬한 반일 시위가 일어나, 혼다자동차·파나소닉·캐논 등 일본 대표 기업들이 한동안 중국 공장 가동을 멈추는 일이 일어났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으로 그해 9~10월 중국 내 일본 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고, 2012년 대중국 수출액은 전년 대비 10% 넘게 줄어드는 등 경제적 피해도 극심했다.
일본 쪽이 더 다급한 상황이 되면서 문제 원인을 제공한 다카이치 총리가 이른 시기에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중국 쪽은 22∼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이미 중국 리창 총리와 다카이치 총리의 회담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중국의 대일본 경제 압박이 더욱 강화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사태 해결을 위해 양국 정상급 대화가 필수적이라는 시각이 많지만 전망은 어둡다”고 내다봤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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