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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기자의 시각] 종묘 앞 논란? 영국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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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영국 런던의 심장부인 웨스트민스터 지역에 가장 상징적인 두 건물이 붙어 있다. 사진 오른쪽 영국 의회인 빅벤(시계탑)이 보이고 바로 뒤로 영국 왕의 대관식 등 주요 행사가 치러지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있다. 그 뒤로도 현대식 고층 건물이 빽빽하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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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인의 심장’이라 불린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식,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 등 굵직한 왕실 행사가 치러졌고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같은 인물들이 묻혀 있다. 하루 세 번 열리는 예배에는 영국성공회 교인과 관광객이 몰려 입장하려면 긴 줄을 서야 한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연평균 약 140만명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완공 600년쯤 뒤인 1859년, 약 200m 떨어진 곳에 당시로는 초고층 건물이 지어진다. 엘리자베스 타워, 흔히 ‘빅벤’이라 불리는 시계탑. 이 금빛 탑의 키는 96.3m로, 19세기 중반 3~5층이던 당시 건물 평균 높이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수직적이고 뾰족한 양식의 건물은 현재까지도 런던 어디서나 눈에 띈다. 영국인들은 그러나 빅벤 건설 당시 이를 반대하기는커녕 “세계 최강 제국의 지위를 상징(symbolise Britain’s status as the world’s leading imperial power)한다고 여겼다’고 기록돼 있다.

    사원에서 몇 분 걸으면 119m 높이의 오피스 건물 밀뱅크 타워가 보인다. 1960년대 지어진 현대식 건물로 UN과 세계은행 사무실 등으로도 쓰였다. 템스강 바로 건너엔 대형 종합병원과 거대한 런던아이까지 한 프레임에 들어온다. 고전적인 건물군과는 확연히 다르면서도 조화로운, 세계적 대도시 런던의 특색이다.

    그런데 서울 도심은 어지럽다. 부동산 가격은 세계적인데, 한편에는 다 쓰러져 가는 판자촌이 있다. 서울시가 종로 일대를 “고밀(高密) 개발하겠다”는 이유는 명확하다. 제값을 못 하는 땅을 제대로 쓰자는 것이다. 그래야 한다는 걸 다수는 알고 있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1395년 지어진 ‘종묘’다. 담장 기준 약 180m 떨어진 곳에 건물을 지으면 종묘의 한적한 경관을 망친다고 한다.

    한국은 조선 시대에 머물러 있는 나라가 아니다. 전 세계 스타디움에서 K팝 콘서트가 열리고, K드라마와 영화는 해외에서 더 인기다. 연간 외국인 1103만명이 우리나라를 찾는다.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600년 전 조선만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역동적인 서울일 것이다. 종묘의 여유와 우리 역사는 소중하다. 하지만 이렇게 서울의 발을 묶어 두는 것이 과연 미래를 위한 일일까. 종묘 근처에 건물이 들어서면 그 유구한 가치는 훼손되고, 수천 년 이어온 한국인의 정신은 무너지는 걸까.

    영국은 150년 전 이미 답을 제시했다. 런던뿐만 아니라 파리, 바르셀로나 등 글로벌 대도시들은 신구 건축물이 어우러져 더 독특하고 강력한 매력을 뿜어낸다.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당긴다. 선거를 위한 근시안적 반대가 아니라 서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를 수 있는 진정한 ‘국가적 비전’을 정치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정녕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한 꿈일까. 우리는 어떤 서울을 만들고 싶은가.

    [김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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