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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인남식의 新중동천일야화] 트럼프는 왜 알카에다 테러리스트였던 시리아 새 지도자를 환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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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드 독재 끝난 지 1년… 과거와 절연한 알샤라가 새 대통령

    이란 힘 빼고 중동 개발하려는 트럼프, ‘전략적 낙관주의’ 선택

    조선일보

    지난달 10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메드 알샤라 시리아 대통령(오른쪽)을 만나 악수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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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아랍의 봄은 중동 전역에서 저항의 불을 댕겼다. 시위는 격렬했다. 시리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수 수니파는 소수 시아파의 한 분파인 집권 알라위파 아사드에게 도전했다. 아사드는 러시아와 이란을 끌어들였다. 외세가 합세한 정부군은 가혹했다. 내전 기간 58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참상이 지속되자 국제사회의 비판이 폭증하고 아랍연맹은 시리아를 축출했지만 러시아와 이란에 힘입은 아사드는 끄떡없었다. 러시아는 대가로 라타키아의 흐메이밈 공군기지와 지중해안 타르투스 군항을 얻었다. 이란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대거 투입, 지상에서 시리아 반군과 싸웠다. 아사드는 이란 시아파 연대의 충직한 심복이 되었다.

    이 와중에 극단주의 테러세력 ISIS까지 발호하자 정국은 극도의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피아 구분 없이 무차별 살상이 난무하는 혼돈 국면에서 반군은 지리멸렬했다. 아사드는 반테러를 명분으로 국제무대 복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아사드 정권을 실각시키지 못할 거면 다독이며 지내자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불행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2023년 봄, 사우디는 아사드의 특사를 환대했다. 아랍연맹도 시리아를 다시 받아들일 태세였다. 10여 년 전, 축출 당시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반전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안정적으로만 보였던 아사드 정권이 창졸간에 무너졌다. 돌이켜보면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 탓이 컸다. 러시아는 제 코가 석 자였다. 시리아 하늘을 지키던 S300 방공망과 일부 수호이 편대를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옮겼다. 시리아 정부군 물적 지원도 대폭 삭감했다. 지원이 끊긴 정부군은 우왕좌왕했다. 여기에 가자 사태 이후 이스라엘의 응징으로 인해 시리아에 파견된 헤즈볼라 대원들도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시리아 북부를 장악하고 있던 핵심 반군세력 HTS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아 전광석화처럼 남진(南進), 수도 다마스쿠스를 무너뜨렸다. 우여곡절 끝에 새 정부를 꾸렸다. 시리아 내전은 끝났다. 꼭 1년 전 오늘, 반세기 넘는 시리아 아사드 부자(父子)의 통치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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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아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면서 사실상 13년간 이어진 내전에 종지부를 찍은 가운데 2024년 12월 8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시티역 광장에 모인 시리아인들이 아사드 정권 붕괴에 환호하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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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국제사회는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바로 시리아 신정부 지도자인 알샤라 대통령이 알카에다 출신이라는 점이다. 1000만달러의 현상금까지 걸려 있었다. 자칫 시리아가 ‘ISIS 시즌2′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는 마냥 기우가 아니었다. 알샤라는 물론 스스로 개과천선했음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에서 지난 8년간 알카에다와 절연하고 독자적으로 온건 통치 체제를 운영해 왔다. 주민들의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테러리스트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국제사회는 좀처럼 그를 환영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 조심스럽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달랐다. 11월 10일 백악관에서 알샤라를 따뜻하게 맞았다. 시리아 지도자의 첫 백악관 방문이었다. 트럼프는 어려운 환경을 거쳐 온 알샤라를 상찬했다. 제재 해제도 연장했다. 놀랄 만한 장면이다. 알샤라는 불과 1년 전까지 미국이 테러리스트로 지정한 위험 인물이었다. 바이든 정부였다면 백악관에서 그를 맞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옛 테러리스트 알샤라를 환대하며 기대감을 피력했을까? 거래주의자 트럼프 특유의 승부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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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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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지정학의 판을 바꾸는 시리아의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아사드의 시리아는 러시아의 교두보였고, 이란의 핵심 파트너였다. 자연스레 반미, 반서구의 거점이 된 셈이다. 알샤라의 시리아를 미국이 품으면 친미 교두보가 될 수 있고 이란이 주도하는 반미 시아파 저항의 축을 무력화할 수 있다. 대테러전에서도 의미가 있다. 시리아에 남아 있는 ISIS의 잔당을 사전에 통제하고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샤라만큼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를 잘 아는 인물도 드물다. 백악관 회담 이후 시리아의 반테러 90번째 동맹국 참가 소식이 전해졌다.

    둘째, 개발의 의지가 읽힌다. 시리아는 로마 시대 페니키아다. 동지중해를 장악하고 지금의 튀니지 지역인 카르타고를 식민지로 둘 만큼 강성했다. 아랍 최초의 움마이야드 왕조 이래 다마스쿠스는 중동의 중심이었다. 내전으로 폐허가 된 역사문명의 보고(寶庫)이자 아랍의 정수(精髓)를 복원하고 싶은 개발업자 특유의 본능도 작동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아랍의 한 건설기업은 다마스쿠스 ‘트럼프 타워’ 건축을 제안했다고 한다.

    셋째, 외교 호재로 인식하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자랑인 아브라함 협정의 후보군으로 시리아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스라엘과 알샤라 정부 간 평화협상 물밑대화가 오가는 중이다. 이스라엘의 숙적 시리아를 품어, 이스라엘과 수교시키는 극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싶어할 것이다. 성사된다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넷째, 알샤라 대통령의 절실한 태도도 한몫했을 것이다. 알샤라는 시종여일 자신이 바뀌었음을 이야기한다. 비록 여전히 수염은 기르지만 늘 정장에 타이를 매고 회담에 참여한다. 상징성이 크다. 이슬람 전통주의를 견지하면서도 미국 등 외국과 잘 지낼 의지를 표현하며 도움을 요청한다. 중동의 노회한 지도자 중 트럼프에게 이렇게 절실하게 다가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마음에 들었을 법하다.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습을 두고 네타냐후를 탓하며 알샤라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아마 트럼프의 속내는 확신 반, 의심 반일 것이다. 실제로 시리아 신정부의 통치 행태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세평이 엇갈린다. 그럼에도 미국이 일단 믿고 나가는 것은 일종의 견인책이다. 알샤라는 아직 이슬람 원리주의 이념에서 완전히 탈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국제 무대에서 정상적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한다. 모호한 상황 속에서 트럼프는 알샤라를 도와 미국의 의지대로 시리아를 이끌어갈 수 있다는 전략적 낙관주의(strategic optimism)를 선택한 셈이다. 국제정치에서 낙관론이 들어맞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시리아만큼은 예외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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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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