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방보경 기자] 20년 미제로 남을 뻔했던 ‘신정동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이 밝혀졌다. 연쇄살인범은 빌딩 관리인으로, 모르는 여성을 대상으로 연이어 성범죄를 저지르다 실형을 받았고 현재는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정동에서 2006년 여성을 납치한 자와 동일범이라는 의혹으로 이 사건은 ‘엽기토끼 사건’으로 명명됐으나, 두 사건은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05년 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경찰들이 수사를 하고 있다. (사진=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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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21일 오전 브리핑에서 장기 미제 사건이었던 ‘신정동 부녀자 살인 사건’ 범인을 장모(사망 당시 70대 초반)씨로 특정했다고 밝혔다. 장씨는 두 차례의 ‘신정동 연쇄 살인’ 후에도 2006년 2월에 동일 수법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가 발각돼 실형을 산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그는 지난 2015년 7월 암으로 사망해, 경찰은 해당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불송치 종결 예정이다.

‘신정동 부녀자 살인 사건’은 지난 2005년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두 차례 일어난 사건이다. 당해 6월 한 초등학교 골목에서 한 여성이 쌀자루에 담겨 숨진 채로 발견됐고, 11월에도 다른 여성이 비닐에 쌓여 주택가의 쓰레기 무단 투기장에서 발견됐다. 당시 서울양천경찰서는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8년간 수사했으나,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어 지난 2013년 수사를 중단한 끝에 미제로 남게 됐다.

사건은 한때 ‘엽기토끼 사건’으로 불리기도 했다. 연쇄살인이 있던 이듬해 한 여성이 신정동에서 납치를 당해 가까스로 빠져나왔는데, 한 방송 프로그램이 두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당시 생존 여성이 “범인 신발장에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고 말하면서 ‘엽기토끼 살인사건’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 미제전담 수사팀 수사 결과, 두 사건의 연관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엽기토끼 사건은 2006년 5월에 일어났지만, 신정동 연쇄살인범은 2006년 2월 강간치상 혐의로 체포돼 9월까지 복역했기 때문이다. 당시 장씨는 자신이 근무하던 Y빌딩으로 피해자를 유인해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가 1층 문이 열려 있지 않아 돌아가려고 하자, 지하로 길이 있다며 안내하다가 돌변한 것이다. 장씨는 도망가던 피해자를 쫓는 과정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앞선 두 사건도 유사한 방식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Y빌딩을 방문한 여성들을 지하 1층 창고로 끌고 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시나리오다. 다만 당시에는 시신 2구가 각각 인근 초등학교와 신정동 주택가 노상 주차장에 유기돼 있어, Y빌딩과의 연관성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추측된다. 경찰 관계자는 “2005년 사건에서 DNA가 검출된 게 없다 보니, 수사를 하기 어려웠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지난 9월 경기도에 위치한 정씨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사진=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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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건은 미제로 남을 뻔했으나, 경찰은 철저한 탐문 수사로 진범을 밝혀냈다. 서울경찰청은 미제사건 전담팀을 신설해 2016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국과수에 현장 증거물을 의뢰했다. 그 과정에서 23만1897명의 수사대상자를 선정한 후 1514명의 유전자를 대조했다. 중국 등 해외 데이터베이스를 대조했지만 일치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사망한 사람 중 범인이 있지 않을까 착안해 56명을 후보군으로 선정한 결과 장씨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장씨가 사망한 상황에서 경찰이 확보한 DNA와 장씨의 DNA를 대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경찰은 탐문수사 끝에 한 병원이 장씨의 검체를 보관하고 있음을 확인했고, 파라핀 블록과 슬라이드를 확보해 장씨를 최종 피의자로 특정했다. 경찰은 이후 장씨가 생전 일했던 18곳의 근무처와 교도소를 돌아본 후 사건의 전말을 밝혀냈다. 재소자들은 장씨가 살아생전 “사람을 죽였다”며 자랑하듯 말했다고 한다.

경찰은 “앞으로도 살인범은 저승까지 추적한다는 각오로, 장기미제 사건의 진실을 범인의 생사와 관계없이 끝까지 규명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