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2 (금)

    이슈 오늘의 사건·사고

    30대 ‘쉬었음’ 사상 최대...한국 노동시장에 무슨 일이? [채제우의 오지랖]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쉬었음’. 지난달 대한민국에 사는 30대 중 취업도 구직도 하지 않는 ‘쉬었음’ 인구가 33만4000명으로 집계됐습니다. 1년 전보다 2만4000명 늘어났고요.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30대면 생애 주기상 일자리를 찾고,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는 등 가장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해나갈 시기죠. 하지만 구직 활동조차 포기한 30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 오늘날 한국의 현실입니다. 어떤 상황인지, 이게 왜 문제인지. 오지랖에서 짚어봤습니다.

    국가데이터처가 최근 발표한 ’2025년 10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고용률은 63.4%로 전년 동월 대비 0.1%포인트 상승했습니다.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9년 이후로 10월 기준 최고치입니다. 취업자는 2904만명으로 19만3000명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는데요. 고용률만 놓고 보면 참 긍정적인 상황이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냥 좋아하기 이릅니다.

    조선일보

    30대 '쉬었음' 인구는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조선일보 유튜브 '오지랖'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연령별로 보면요. 60세 이상 고령층 취업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만4000명 늘어난 711만명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15~29세 청년층은 16만3000명 줄어 352만1000명에 그쳤는데요. 정리하자면 경제활동을 하는 고령층은 늘어났는데 청년층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란 겁니다. 건강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죠. 고용률도 고령층(48.1%)은 0.7%포인트 상승하면서 1월 이후 10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청년층(44.6%)은 1.0%포인트 감소하며 작년 5월부터 18개월 연속 하락 중입니다. 청년층의 고용 한파가 길게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를 두고 공미숙 국가데이터처 사회통계국장은 “경력직 위주 채용, 수시 채용이 청년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며 “청년층이 많이 가는 산업인 제조업이 (경기가) 안 좋은 부분도 영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보통 이 고용 통계를 뜯어볼 때 제조업은 국가 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높고, 상대적으로 소득도 높은 양질의 일자리로 분류하는데요. 이 제조업 취업자가 전년 동월 대비 5만1000명 줄어든 436만4000명을 기록했습니다. 무려 16개월 연속 감소했습니다. 건설업(193만7000명)도 12만3000명 감소해 18개월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제조업의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고, 다들 아시다시피 국가 경제에서 부동산이 참 큰 부분을 차지하잖아요. 그런데 이 두 축이 모두 흔들리고 있단 얘기입니다.

    조선일보

    취업자 수 감소는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많이 일어났다./조선일보 유튜브 '오지랖'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문제를 꼽자면 고용시장에서 이탈한 ‘쉬었음’ 청년이 늘고 있단 사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30대 쉬었음은 1년 전보다 2만4000명 늘어난 33만4000명으로 집계됐는데요.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전 연령대에서도 쉬었음은 13만5000명 늘어난 258만명이었고요. 일을 하지도, 일자리를 찾고 있지도 않은 취포자가 늘어나는 건 노동시장의 적신호가 분명하죠.

    그런데 심지어 일할 의욕이 있는 이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반강제적으로 ‘장기 백수’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구직 활동을 6개월 이상 했는데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장기 실업자는 지난달 기준 11만9000명입니다. 2021년 10월(12만8000명) 이후 4년 만에 많은 수준입니다. 6개월 이상 장기 실업자는 팬데믹 시절인 2020년 5월∼2021년 12월 계속해서 10만명을 넘었습니다. 이후 평균 10만명 아래에 머무는 등 안정을 찾은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지난달 급증한 겁니다. 특히 지난달 전체 실업자(65만8000명) 중 장기 실업자 비율은 18.1%였는데요. 이게 10월 기준으로 1999년 통계 작성 시작 이래 최고 수준이고요. 외환 위기 여파가 계속되던 1999년 10월(17.7%)보다도 높았습니다. 쉬었음 청년도 사상 최고, 장기 실업자 비율도 사상 최고…제가 말하면서도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란 생각이 듭니다.

    전문가들은 4년제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고학력 청년층이 장기 실업자 증가의 주된 요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4년제 대졸 이상 학력을 지닌 20~30대 중 장기 실업자는 3만5000명으로 집계됐는데요. 지난해 9월(3만6000명)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많습니다.

    조선일보

    4년제 이상 대졸자 가운데 6개월 이상 장기 실업자가 늘어난 주된 원인은 좋은 직장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 '미스매치'가 꼽힌다./조선일보 유튜브 '오지랖'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연령대를 5세 단위로 보면 25~29세에서 규모가 가장 컸습니다. 총 1만9000명이 학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장기 백수 상태였다고 하죠. 이에 대한 해설은 명확합니다. 고학력자가 6개월 이상 취업을 하지 못한 장기 실업자가 되는 건 우리 사회에 그만큼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4년제 대졸자는 넘쳐나는데, 이들의 눈에 차는 일자리가 없다는 거죠. 일자리 시장에서 공급은 넘쳐나는데, 이들에 대한 수요가 부족한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게요. 장기 실업자가 구직 활동을 포기해버리는 ‘쉬었음’으로 언제든지 넘어갈 수 있거든요.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구직 의사가 없는 청년들이 더 쏟아져 나올 수 있단 얘기입니다.

    한국을 둘러싼 다양한 위기가 있지만 해외 전문가들이 가장 심각하게 보는 문제 중 하나는 고령화와 저출산인데요. 인구가 늙으면 노동 가능 인구도 늙고, 사회 전반의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노인을 부양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높아져 국가 부채도 늘어날 수밖에 없고요. 여기서 저출산까지 겹치면 소수의 청년이 다수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기형적 인구 구조가 나타나는 겁니다. 바로 이웃 나라 일본에서 볼 수 있었죠.

    이미 인구통계학적으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사회에 6개월째 장기 실업에 처한 고학력자가 속출하고, 구직 활동을 포기한 30대 쉬었음 인구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정말 늦은 겁니다. 하루빨리 대책 마련이 필요합니다.

    [채제우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