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사. 한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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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항소 포기’ 파문을 수습하기 위해 간부급 인사를 조기 단행했지만 논쟁거리를 남겼다. 당장 주요 사건 1심 선고 뒤 검찰이 어떻게 대응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신중 의견’이 사실상 수사지휘권 행사라는 비판도 이어진다. 법조계에서는 인적 쇄신을 넘어 이번 기회에 검찰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대장동 사건으로 띄운 ‘항소 제기’ 기준 어떻게?
검찰이 지난 7일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1심에 대한 항소를 포기한 것이 이례적이라는 데에는 항소포기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측 모두 큰 이견이 없다. 그간 검찰은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면 ‘기계적으로’ 항소하곤 했다. 특히 세간의 이목이 쏠린 주요 사건에서 일부 무죄가 나왔는데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3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검사들이 되지도 않는 걸 기소해서 무죄가 나오면 면책하려고 항소와 상고를 해 국민에게 고통을 준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대장동 항소 제기 의견에 “신중하라”는 뜻을 전달했다.
앞으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검찰의 항소 제기 혹은 포기는 대장동 항소포기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당장에 검찰은 지난 20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등 야당 의원에 대한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에 대한 1심 선고 항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대장동 개발 비리 구조와 비슷한 위례신도시 사건에 대한 결심공판은 오는 28일 진행돼 이르면 연내 선고가 예상된다. 다음 달 26일에는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고위공직자들이 연루된 ‘서해 피격 은폐 의혹 사건’ 1심 선고가 나온다. 이들 사건에서 검찰이 항소 여부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가 또다시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항소 자제” 기조는 의견 제시로 할 것이 아니라 제도적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법원에서 별건 수사 등 위법성에 따른 문제가 지적됐을 때 항소 여부 판단 등 기준을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항소 자제는 1심 재판이 제대로 됐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므로,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호중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항소 자제’가 잘 작동하려면 1심 재판의 판사들도 대폭 보강돼 집중적으로 담당 사건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며 “제도적으로 1심 재판을 보완하는 사법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권력 비대화와 수사지휘권의 역사
이번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의 또 다른 쟁점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 여부였다. 정 장관이 대검찰청에 전달한 “신중 검토 의견”을 실질적인 수사지휘권 행사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여전하다. 법조계에서는 이를 지휘권 행사로 본다면 과연 ‘민주적 견제’로서 정당성이 있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관의 개입이 실제 권력 통제 장치로 기능했는지, 아니면 정치적 외압이었는지 살피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역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명분상 검찰권 오남용 통제를 목적으로 행사됐다. 2005년 천정배 장관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고, 2020년 추미애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측근 비위 의혹 사건 등에 대해 지휘권을 발동했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김경한 장관이 이른바 ‘광고주 협박 사건’(보수언론 광고 중단 운동) 수사에 개입해 지휘권을 행사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일련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비대한 검찰권을 견제한다는 순기능과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는 논란을 동시에 불러왔다. 이에 시민사회에서는 수사지휘권 행사 기준을 엄격히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김희순 참여연대 권력감시1팀장은 “노만석 전 검찰총장 직무대행의 발언은 정권 입맛에 맞추려다 보니 어려웠다는 토로이자, 사실상 ‘정치 검찰’임을 자인한 셈”이라며 “이번 사안은 단순한 수사지휘의 문제를 넘어선다”고 말했다. 이어 “대검에서 법무부로, 다시 일선 지검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지시 구조 자체를 타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의 직접적인 참여와 견제 필요”
내년 10월부터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한 검찰개혁이 본격화된다. 이에 따라 다양한 검찰권 견제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수사-기소 분리 논의에서 보완수사권 존치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른 배경 역시 검찰권 오남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시민사회의 직접 참여를 통한 ‘민주적 통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일본의 검찰심사회, 미국의 대배심제도 등을 통해 시민이 직접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감시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는 고검에 이의를 제기하는 ‘검찰항고제’나 법원에 공소 제기 결정을 구하는 ‘재정신청’ 제도가 있지만, 활용 폭이 좁아 검찰권 견제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검찰 내 항고심사위원회나 수사심의위원회 역시 정보 접근이 제한적인 데다 전문가 위주로 구성돼 시민 참여라는 본연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호중 교수는 “검찰개혁 이후에도 수사기관은 존재하므로 권한 남용 우려는 여전할 것”이라며 “통제의 주체는 결국 시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기관에 대한 국민의 민주적 통제가 확립될 때 비로소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참여할 시민에 대한 명확한 권한 부여와 정보 제공, 보상 체계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만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행정안전부 소속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은 외부 영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제도 변화와 함께 검사 자신의 인식 변화도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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