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1 (목)

    이슈 오늘의 사건·사고

    [단독] 법원 “진화위, 6·25 민간인 희생자 백락정 사건 재조사 않고 각하한 것은 위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백락정의 젊은 시절 사진. 유족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법원이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백락정의 진실규명(피해 인정) 결정을 취소하고 신청 자체를 각하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대해 “각하는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백락정은 진실규명을 인정 받은 뒤, 국방경비법에 따른 군법회의 사형판결문이 뒤늦게 발견됐다는 이유로 진실규명이 취소되고, 신청 자체도 각하됐다. 이는 2기 진실화해위가 활동을 마무리하며 내놓은 종합보고서에서 주요 쟁점으로 꼽을 정도로 논란이 된 사건이었다.

    한겨레가 27일 희생자 유족으로부터 입수한 서울행정법원 제8부(재판장 양순주) 판결문을 보면, 전날 법원은 고 백락정(백낙정, 1919년생)의 조카인 백남식씨가 진실화해위를 상대로 낸 진실규명 취소 이의신청 기각결정 취소소송에서 “피고(진실화해위)가 재조사를 통해 사망 이유, 사망 시기를 밝힌 뒤 진상규명 결정 또는 불능 결정을 해야 함에도 이러한 조사를 하지 않은 채 이 사건 각하 결정을 한 것은 위법하다”면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진실화해위가 재조사도 하지 않고 각하 결정을 내린 것은 위법하다는 의미다.

    다만 법원은 백락정씨에 대한 진실규명 취소에 대해서는 “망인의 사망일자와 관련한 원고의 주장과 대전형무소 기록이 다르게 확인된 이상 진실화해위의 취소 결정이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백락정 사건’은 26일 활동을 마감한 2기 진실화해위가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한 종합보고서에서 ‘부역자 심사’ 논란을 빚은 진도·영천 사건에 이어 주요 쟁점으로 꼽았던 사건이다.

    한겨레

    한국전쟁기 충남 남부지역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백락정의 조카 유족 백남식(왼쪽 둘째부터 오른쪽으로), 백락정의 아들 백남선씨와 이명춘 변호사가 지난해 2월14일 김광동 진실화해위 위원장에 대한 형사고소장을 접수하기 직전 기자들에게 고소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충남 서천군 시초면 풍정리에 살던 백락정은 1950년 6월 말 경찰에 끌려간 형 백락용(1911년생, 당시 동아일보 서천지국장)을 찾으러 갔다가 행방불명됐고, 이후 1950년 7월에 산내 골령골에서 학살됐다는 조사결과에 따라 2023년 11월 충남 남부지역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의 희생자로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1951년 1월6일자로 된 백락정의 군법회의 사형 판결문이 발견되면서, 논란 끝에 재조사가 의결됐다. 하지만 지난해 12월3일 전체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추천 위원들이 항의하며 퇴장한 가운데 백락정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 취소 및 신청 각하 심의·의결안이 통과됐다. 진실규명을 취소한 것은 물론, 신청 자체를 각하해 재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백락정 진실규명 취소 등의 근거가 된 군법회의 사형 판결문의 신빙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망인이 이 사건 판결 집행으로 사망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 근거로 △(1951년 군법회의) 사건 판결문에는 판결 이유가 생략된 점 △1951년 대전교도소 재소자 인명부의 출소 원인에 ‘사형 출소’가 아닌 ‘사망 출소'로 기재된 점 △1950년 내지 1953년 대전지방검찰청 집행원부와 법무부 검찰국에서 생산한 1950년 내지 1986년 사형인 명단에 나와 있지 않은 점. △(군법회의) 판결의 집행지휘서나 망인의 사형, 시신처리 관련 기록도 확인되지 않는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이어 “‘망인이 1950년 7월 초 지서에 감금된 채 구타당한 모습을 가족들이 보았다'는 원고의 진술, 망인의 형인 고 백락용은 1950년 6월28일부터 7월17일 사이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군경에 의해 희생된 점, 1950년 전후로 민간인들이 좌익 활동에 가담했다는 점 등의 오인을 받아 즉결처형되거나 군법회의에 회부되는 일이 다수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망인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 내용이 그 자체로서 명백해 허위이거나 이유가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겨레

    고 백락정의 조카 백남식씨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낸 백락정의 육군본부 고등군법회의 사형판결문 뒷장. 판결 이유가 공란으로 비어 있다. 백남식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군정 시기 군인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국방경비법에 따른 민간인 재판은 그동안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 희생자들의 재심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단심제로 40일 이내 집행됐으며, 군인을 대상으로한 법률로 민간인을 재판하는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1기 진실화해위도 2009년 ‘부산·경남지역 형무소 재소자 희생 사건’ 진실규명 보고서에서 군법회의 판결을 사실상 집단학살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백락정이 재판을 받았다 해도 ‘사법적 학살’이 명확한 사안이라 진실규명을 취소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 판결에 대해 소송의 원고였던 백락정의 조카 백남식씨는 “사실에 근거한 재조사에 임할 수 있도록 판결해주신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 한 조사관은 “(백락정 사건은)조사관들한테 제일 아픈 손가락이었는데 너무 기쁘다”고 밝혔다. 전체위에서 백락정 진실규명 취소 및 신청 각하 결정에 항의하며 퇴장했던 이상훈 전 상임위원도 “역사가 바로 잡히는 느낌이다. 3기 위윈회가 출범하면 재판의 형식만 갖춘 사법살인의 실태를 폭넓게 조사해야 하며, 당시 각하 결정을 내부에서 유도한 경위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내란 종식 그날까지, 다시 빛의 혁명 ▶참여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