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몬드’ 공연 사진. 라이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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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감정표현불능증’을 앓는 16살 소년 윤재의 눈동자는 지나치게 맑고 건조하다. 감정의 울컥함도 떨림도 없이, 마치 외부 온도를 차단해버리는 단열 유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 지난 9월 서울 대학로 놀유니플렉스에서 재연 막을 올린 창작 뮤지컬 ‘아몬드’(14일까지)는 무표정한 윤재의 눈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감정의 체온을 조용히 드러낸다.
책방을 운영하는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으로 세상과 근근이 호흡하던 윤재(문태유·윤소호·김리현)는 열여섯번째 생일이자 크리스마스이브에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사건을 겪으며 하루아침에 혼자가 된다. 하지만 혼자가 된 감정조차 느끼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게 된다.
조용한 윤재의 세계에 가장 먼저 파문을 던지는 이는 소년원 출신 ‘일진’ 곤이(윤승우·김건우·조환지)다. 그는 폭발하는 감정의 덩어리처럼 등장해 윤재의 무표정한 표면에 금을 낸다. 반대로 육상 선수를 꿈꾸는 해맑은 도라(김이후·송영미·홍산하)는 그 틈새에 빛처럼 스며들어 따뜻한 온기를 남긴다. 무감, 과잉, 순수, 세 방향의 감정이 부딪히며 서로를 비추는 과정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인 ‘희망’을 한층 선명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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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연출은 배우들 사이의 거리, 시선이 머무는 시간의 길이, 침묵 같은 비언어적 요소로 관계의 성장을 표현한다. 윤재 역 배우를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이 1인 다역을 통해 ‘사회’라는 다층적인 얼굴을 드러낸다.
원작인 손원평의 소설 ‘아몬드’는 국내 100만부 이상 판매, 30여 나라 출간이라는 성과를 넘어, 2020년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수상과 아마존 ‘5월의 책’ 선정 등 문학적 신뢰도까지 쌓아왔다. 뮤지컬은 이 성과들을 장식처럼 내세우지 않고, 원작의 주제를 시각·음향·동선의 언어로 재번역한다. 관객은 작품을 따라가며 어느 순간 윤재의 무표정 속에서, 그리고 곤이의 분노 속에서, 우리 사회가 매일 선택하는 감정적 거리 두기를 보게 된다.
음악 역시 윤재의 감정처럼 과장 없이 흐른다. 윤재의 노래는 잔잔한 수면처럼 파동이 거의 없다. 그 위로 곤이의 거친 숨과 도라의 맑은 선율이 얹히며 서로의 빈 곳을 비춘다. 이 대비가 조용하지만 선명하게 감정의 구조를 드러낸다. 중소 규모 뮤지컬에서는 드문, 인터미션이 포함된 긴 러닝타임(165분)은 서사를 넓게 펼치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감정이 지긋이 우러나도록 기다리는 시간처럼 쓰인다. 일부 장면에선 다소 느슨해지기도 하지만, 이마저 작품이 품은 ‘시간의 온도’로 느껴진다.
‘아몬드’는 소년 성장담이라기보다 감정의 속도에 대한 질문에 더 가깝다. 작품은 윤재를 결함 있는 아이로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그 아이를 거울 삼아 우리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무감해졌는지 되묻는다. 관객은 극장을 나서는 순간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작고 느린 감정의 신호를 흘려보냈는지를 알아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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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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