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사지드 자비드 (1969~)
아버지 압둘 가니 자비드는 가난한 이민자, 단돈 1파운드를 들고 파키스탄에서 영국으로 왔다.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버스 운전사가 됐다. “영국에서 가장 위험한 거리”의 방 둘짜리 좁은 집에서 다섯 아이를 키웠는데, 사지드 자비드는 1969년 12월5일에 태어났다.
사지드 자비드는 공부를 잘했다. 가족 가운데 최초로 대학에 진학. 졸업 후 다국적 은행에 취직해 초고속으로 승진. 20대에 체이스맨해튼은행의 부사장이 됐고 그 뒤 도이체방크의 이사가 됐다. 수백만파운드의 연봉을 받았다나.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 금융 엘리트가 되다니, 놀라운 이야기.
더 놀라운 이야기가 이어진다. 2009년에 금융계를 떠나 정계에 입문. 2010년에 국회의원 출마. 그런데 소속 정당이 영국 보수당이었다. “나라는 기회를 줄 뿐, 나머지는 개인 노력 나름.” 성공한 이민자 2세의 보수주의 세계관.
학창 시절 백인 아이들에게 유색인이라며 차별받던 사지드 자비드, 백인 엘리트 이미지가 강한 보수당에서 활약. “무슬림 후보로 되겠느냐”, “당의 가치와 맞는 후보인가”, 보수당 일각의 반발. 그러나 보란 듯 지역구에서 당선. 그 뒤로 승승장구. 2014년에 문화장관, 2015년 산업장관, 2016년 주택장관. 2018년에 영국의 4대 공직 중 하나라는 내무장관이 됐다. 아시아 사람 최초, 무슬림 최초. 하지만 보수적인 이민과 치안 정책을 펴다가 “자기 공동체를 배신하느냐”, “정체성을 정치적 자원으로 이용하느냐”며 진보 쪽에서도 비판을.
2019년에 재무장관이 되었다가, 2020년 총리실과 갈등을 빚고 물러난다. 2021년에 보건장관으로 돌아와 코로나19에 대응. 2022년에는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한다. 금융계에 복귀할지 모른다는 뉴스도 있다. 아직 한창나이. 논란 많은 인물이지만 여전히 영국 사회의 중요한 상징이다.
사지드 자비드를 보며 나는 한국 사회를 생각한다. 가난한 이민자 2세가 엘리트가 되고 보수 정당의 정치인으로 고위 공직자가 된다면? 한국 사회의 반응은?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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