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홍콩 신계지구 타이포구 왕푹코트 화재 현장 인근에 추모객들이 헌화한 꽃들이 놓여 있다. 홍콩/이정연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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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연 | 베이징 특파원
그곳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지난달 28일 밤 11시께 홍콩 북부 신계지구 타이포구의 왕푹코트 아파트 화재 현장, 거의 모든 것이 불타버린 잔해 사이에 수색대는 조명을 비췄다. 검게 탄 31층 아파트 5개 동은 어둠 속에서 우뚝 서 있었고, 몇군데에서 수색대의 흰색 조명이 바깥을 향했다. 두 손 모아 기도하며 화재 현장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인근에 마련된 실종자 신원 확인소에선 애끓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달 27일 오후 현장에 도착해 만 하루가 지나 이 풍경을 보고 꾹 누르고 눌렀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11년 전 세월호가, 팽목항이 거기 있었다. 충격과 분노 그리고 애통함이 한데 뒤섞인 왕푹코트 아파트 화재 현장 일대는 그곳과 똑 닮아 있었다. 10년도 넘은 일이지만, 아주 깊게 각인된 그날의 슬픔은 피할 틈 없이 밀려왔다.
늦은 밤 취재를 마치고 눈시울을 붉히며 앉아 있자, 한 여성이 다가왔다. 심리상담사라고 소개한 그는 자신을 에이미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는 인사를 나누고 한동안 가만있는 나를 그대로 두었다.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나는 유가족이 아니다. 취재하러 온 기자다.” 그는 상관없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된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와 잠시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에게 너무 큰 슬픔이었고, 여기에서 다시 그런 슬픔을 느낀다”고 말하자, 에이미는 “그렇게 말해줘서 홍콩 사람으로서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대규모 인명 피해를 가져온 참사에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사진처럼 떠오른다. 유가족들의 망연자실한 울분, 현장을 바라보며 단 한명이라도 살아오길 간절하게 바라는 이웃 시민들, 그럴 이유 없는데 자신이 죄라도 진 듯 얼굴을 푹 숙인 채 진압과 구조, 수색 작업을 위해 현장으로 향하는 소방대원들.
그 사이로 공통된 장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한달음에 달려와 유가족과 이재민들을 위해 자원봉사에 나선 시민들이다. 지난달 27일부터 화재 현장 인근 상가 앞에는 구호용품 나눔터가 생겼다. 당장 필요한 옷가지와 이불, 식료품, 생활용품 등을 모아 전달했다. 이재민들이 키우는 반려동물을 위한 용품까지 등장했다. 수없이 많은 자원봉사자가 내게도 음료와 음식 등을 건넸다. “나는 기자”라며 손사래 쳤지만, 그들은 역시 “상관없다”고 했다.
선의에 찬 시민들이었지만, 그 곁에는 짙은 녹색의 전투복을 입은 홍콩 경찰이 늘 맴돌았다. 서너명씩 조를 이뤄 다니던 홍콩 경찰은 추모 열기가 거세질수록 조의 인원을 늘렸다. 지난달 29일엔 구호물품 나눔터가 있던 공간에 경찰 이동식 지휘소가 자리 잡았다. 거의 동시에 정부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던 대학생 마일스 콴이 경찰에 붙잡혔다.
“충분한 애도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아마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심리상담사 에이미는 말했다. 그러나 그걸 가로막는 이들이 있다. 참사의 현장엔 언제나 그런 세력이 있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엄벌이라는 상식적인 요구 앞에 ‘정치적인 분란’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이들 말이다. 왕푹코트 화재 사건에 대한 진정한 애도는 무엇이 진실인지 모른 채로는 불가능한데도 말이다. 긴 시간 속에 홍콩인들이 진실에 닿을 수 있기를, 마음껏 추모하고 슬퍼할 수 있기를 바란다.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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