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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여의도 다양성 살리는 정치개혁 [이석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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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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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태 | 전 헌법재판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2항). 대의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국민은 자신들이 직접 선출한 국회의원들을 통해 주권을 행사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를 보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느냐와 선출한 의원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역할을 잘하고 있느냐를 살펴보아야 한다. 지난해 치른 22대 총선에서 국민은 민주적 선거 절차에 따라 국회의원들을 선출하였고, 그를 토대로 새로운 국회가 구성되었다.



    국회법 33조 1항은 “국회에 20명 이상의 소속 의원을 가진 정당은 하나의 교섭단체가 된다. 다만, 다른 교섭단체에 속하지 아니하는 20명 이상의 의원으로 따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라고 하여 20명 이상의 소속 의원(국회의원 총수 300명의 6.7%)을 가진 정당이나, 소속 정당이 다른 20명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서로 연대하여 하나의 교섭단체가 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국회가 교섭단체 제도를 두고 있는 이유는 국회 운영에서 의사 진행의 원활과 효율성을 꾀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22대 국회에서 교섭단체가 된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의원 수 166명)과 국민의힘(의원 수 107명)이다. 조국혁신당(의원 수 12명) 등 소수 야당들과 무소속 의원들은 합쳐서 하나의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교섭단체 구성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국회 의사 운영의 주요 사항이 ‘국회의장과 원내 교섭단체 대표의원 간의 협의’를 중심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교섭단체가 되면 국고보조금 절반을 교섭단체들이 나누어 받는다. 정책연구위원 연구비와 입법 지원비도 지원받는다. 또한 교섭단체들끼리 의사일정 조정, 국무위원 출석 요구, 긴급현안 질의 등을 협의할 수 있고, 상임위원회나 특별위원회에서 위원장과 위원 선임 등을 주도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교섭단체인 정당은 비교섭단체와 비교할 때 국회 운영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반면 비교섭단체인 정당은 정당 활동에서 국가의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등 국회 운영에서 적극적인 참여가 어려운 실정이다.



    연혁적으로 국회 교섭단체는 ‘교섭단체회’라는 이름으로 제헌의회 때부터 있었다. 한때 소속 의원 수 10명으로까지 완화되었던 교섭단체 구성 요건이 지금의 ‘20명 기준’으로 높아진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위해 1972년 국회 해산과 이른바 유신헌법 선포를 단행한 이후부터였다. 이 제도가 50년 이상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 기간에 국회의 의사 절차는 꾸준히 개혁됐으나 교섭단체 구성 요건은 변화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이번 국회에 들어서도 계속되자 조국혁신당은 지난 11월 “민주당 지도부가 계속 정치개혁 추진을 회피한다면 개혁 야당들과 정치개혁 단일 의제로 ‘원 포인트 국회 공동 교섭단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소수 야당들도 지난 대선 때 나온 공동선언 이행을 촉구하면서 국회 교섭단체 기준을 의원 수 20명 이하로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2월11일 ‘국회 교섭단체 제도의 운영 현황과 쟁점’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13대부터 22대 국회까지 평균 5개의 정당이 원내 의석을 확보했지만, 평균 2.6개의 정당만이 교섭단체를 구성했으며, 비교섭단체 의석 비율은 평균 6.7%였다.” 외국 사례를 보면, 전통적으로 양당제인 미국·영국은 교섭단체를 두고 있지 않다. 일본 국회의 교섭단체인 ‘회파’의 구성 요건 의원 수는 2명이다. 프랑스 국회의 경우 교섭단체 구성 요건 의원 수는 15명으로 총 의원 수 577명의 2.6%다. 독일 국회의 교섭단체 구성 요건은 전체 의원 수의 5%다. 이들 사례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교섭단체 구성 요건이 상대적으로 높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국회법에 따라 교섭단체는 정책연구위원을 둘 수 있는데, 이는 비교섭단체에 대한 차별이어서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대하여 2004헌마654 결정(2008년 3월27일 선고)에서 헌법재판소는 다수 의견으로, “국회 입법 활동의 활성화와 효율화를 이루기 위하여는 우선적으로 교섭단체의 전문성을 제고시켜야 하며, 교섭단체가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을 공무원 신분인 정책연구위원으로 임용하여 그 소속의원들의 입법활동을 보좌하도록 할 필요성이 발생하므로, 교섭단체에 한하여 정책연구위원을 배정하는 것은 입법재량의 범위 내로서 그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하여 합헌으로 판단하였다. 이에 대하여 소수 의견은, “오늘날의 정당국가하에서는 소수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의사도 입법으로써 반영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하여는 소수 정당에도 정책연구위원을 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위헌 의견을 제시했다.



    2013년 6월 박기춘 민주당 전 의원 등 20명의 의원은 교섭단체의 구성 기준을 ‘10인 이상’으로 낮추는 법안을 발의했다. 당시 박 의원은 “거대 정당에 비해 군소 정당 소속이나 무소속 의원들의 교섭단체 구성이 어려워 거대 정당이 국회 운영을 독점하는 결과가 발생한다”며 “구성 요건을 10인 이상으로 완화해 다양한 정치적 세력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법 개정 취지를 밝혔다. 이번 22대 국회에서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지난 3월 국회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15인으로 완화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역임한 박 의원은 개정안이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유신 체제 이전으로 되돌린다는 역사적 의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회의원 1인은 대략 20만명의 인구를 대변한다. 이는 비교섭단체 소속 의원 개개인의 대표성도 마땅히 존중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종래는 거대 양당이 국회 운영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이런 의견이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 국회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민주당이 국회의원 수 절반을 넘는 여당이 된 이상 야당의 반대로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완화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하기 힘들다. 이번 정부가 국민 주권을 중시하는 정책을 펴고자 하는 만큼 그 실질적 구현을 위해서라도 국회 교섭단체 구성 요건에서 완화된 입장을 보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간 국회 활동에서 차별을 받았던 비교섭단체 소속 의원의 활동도 보장하는 국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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