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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호 | 정책금융팀 기자
언론사에 입사한 날로부터 10년차의 해가 곧 마무리된다. ‘입사 10년차’라든가 ‘기자 생활 10년째’라고 말하지 못하고, 애매한 표현을 쓴 데는 이유가 있다. 중간에 2년 정도 딴짓을 하고 온 터라 실제 기자로 일한 햇수는 8년이기 때문이다.
기자 2년차에 항해사가 되겠다며 사표를 내고 부산으로 갔다. 외부자로 막연하게 그리던 언론의 모습과 내부자가 되어 마주한 현실의 간극이 컸다. 극내향인으로서 사람을 많이 만나고 너스레를 잘 떨어야 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산업 담당 기자로 배치되어 해운 산업을 취재하며 그 매력에 빠지게 된 것이다.
당시 퇴사를 하며 ‘나는 왜 기자를 그만두었나, 왜 항해사가 되려고 했나’라는 제목의 글을 써뒀는데, 오랜만에 들춰봤다. “겉핥기가 싫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고, 헛헛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 콘텐츠로 먹고살기 어렵고, 광고로 먹고산다. 내 사명감은 나를 희생하며 의미 있는 기사를 쓸 만큼 단단한가.”
나는 내가 얼마나 우유부단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써둔 글이다. 배 타는 일도 금방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 게 뻔하므로, 그때 이 글을 읽고 마음을 다잡으라는 의도였다. 이미 결과는 아시겠지만, 그 의도는 달성되지 못했다.
부산에서 교육을 마친 뒤 교육생 신분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서북부의 철광석 광산과 한국 포항·광양의 제철소를 오가는 철광석 운반선을 탔다. 정신없이 바쁘고 피곤한 가운데서도 반짝거리는 짙푸른 바다와 컴컴한 밤에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도 제법 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던 것이 있다. 정식으로 항해사가 된 이후의 삶을 그려보는 나는 자꾸 돈 생각만 했다. ‘배를 3년 더 타면 얼마를 모으겠네’ 같은 생각들이다. 하지만 기자 일을 할 땐 달랐던 것 같다. 언론의 현실에 실망하고, 나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고 불안해하며 좌절하면서도, 매달 25일 월급이 통장에 찍히는 순간에만 ‘참으로 작고 소중하구나’ 생각하며 한숨을 쉬고는 곧바로 잊어버렸다. ‘어? 생각보다 나 기자 일 재밌게 했네?’라고 생각한 계기다. 그래서 돌아왔다. 떠났던 회사로 2년 만에 복귀했다가, 4년 전부터 한겨레신문으로 옮겨 일하고 있다.
항해사가 되겠다며 사표를 낸 초년생 기자가 쓴 글에 담긴 고민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고민들은 이제 떠나야 할 이유가 아니라, 내가 기자로서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또는 이 업계에서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등을 점검하는 지표가 됐다. ‘너무 겉핥기식으로 접근했나, 좀 더 취재해볼까?’ ‘기자의 전문성은 무엇이고, 어떻게 쌓을 수 있지?’ ‘콘텐츠로 수익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떤 기사를 쓸 때 사명감을 발휘하지?’ 같은 질문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좋은 기자, 좋은 언론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정답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 고민을 들은 한 선배의 말이다. “정의(justice)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definition)하긴 어려워. 하지만 정의가 무엇인지 고민할수록 정의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해. 좋은 언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만 멈추지 말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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