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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K민주주의 힘’ 1년…12·3 내란계엄 넘어 소통과 연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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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12·3 내란외환 청산과 종식, 사회대개혁 시민대행진’이 열린 3일 밤 국회 정문 앞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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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전, 윤석열 일당이 획책했던 비상대권 장악의 거창한 기획은 단 6시간 만에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지금 그들은 탄핵, 파면당하고,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국회가 군대에 선제 장악되어 계엄 해제의 타이밍을 놓쳤다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은 유린당하고, 정치지도자들은 체포되고 수거당하고, 항쟁하는 시민들에 대한 공격으로 유혈 희생과 내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을 것입니다. 국격은 추락하고, 민생은 파탄 나고, 고삐 풀린 국가폭력이 판쳤을 것입니다.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성은커녕, 지지세를 부추기려 안간힘을 쓰고, 수사와 재판 공간에서 궤변을 일삼고 있습니다. 내란계엄을 극복해낸 우리 국민은 자신감을 갖고 임하되, 긴장을 늦출 수는 없습니다. 내란 극복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정치, 법제, 사회의 문제점을 직시하면서,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고 민주개혁의 발걸음을 착실히 내디뎌야 하겠습니다.



    돌연한 계엄선포 방송을 들으면서 시민들은 처음엔 가짜뉴스인가, 미친 짓인가 의심했습니다. 당황, 불안, 공포에 전염되기 전에, 시민들은 빛의 속도로 국회로 모여들었습니다. 유튜브로 실황 중계를 하면서, 침탈과 저항을 생생하게 알렸습니다. 시민들은 맨몸으로 군대와 맞섰습니다. 의원들도 서로 독려하면서 초고속으로 달려와서, 국회 담을 넘었습니다. 국회는 150분 만에 계엄해제 요구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대통령의 헌법 파괴에 대하여 국회는 헌법 절차로 맞섰습니다.



    대통령은 2차 계엄을 시도했으나 ‘중과부적’임을 깨달았습니다.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에 따라야 할 헌법상 의무, 군대의 신속한 철수, 더 이상 내각의 협력을 얻을 수 없는 사정 등이 선택지를 없앴습니다. 계엄 쿠데타는 6시간 만에 끝났습니다.



    계엄군의 자세도 뭔가 달랐습니다. 내키지 않는 데 온 듯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도 않았습니다. 계엄할 명분도, 집행할 의지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계엄군은 시민들과 직접 충돌을 피하고, 국회의 해제 결의 후 대통령의 명령도 기다리지 않고 철수했습니다. 2024년의 군인은 1980년 군인과 달랐습니다. 민주주의의 기풍이 군대 안으로 서서히 스며든 결과입니다.



    국회 대응의 신속함과 단호함은 놀랍습니다. 2024년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하여, 계엄해제에 필요한 의석을 확보했습니다. 의원들은 계엄 의혹에 대해 거듭 경고했고, 비상시 대비 태세도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1980년 군사계엄에 맞서 장렬하게 싸웠던 5·18민주화운동의 저항 정신을 국민적 교훈으로 새겼습니다. 1980년 광주는 패배했지만, 자기희생을 통해 계엄이란 수단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다고 쐐기를 박았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은 계엄의 실상을 알리고 저항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웠습니다. 노벨문학상의 작가 한강은 5·18의 소년을 12·3의 오늘에 오도록 했습니다.



    반면, 윤석열 일당은 무지하고 황당했습니다. 국회 활동을 금지한다는 포고령 첫줄부터 위헌입니다. 계엄선포의 요건이나 절차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지난 40여년간 우리 군대는 계엄 연습을 해본 적도 없고, 민간인에 대한 적대 행동을 해본 적도 없습니다. 이렇듯 국민과 국회는 계엄에 대비하고 계엄을 극복해 낼 태세를 갖추었으나, 민선 대통령이란 자는 군사독재의 과거 미몽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어 “윤석열 체포”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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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대통령의 탄핵과정이 개시되었습니다. 국회의 탄핵소추는 12월14일, 계엄 발동 후 불과 10일 만에 성사되었습니다. 여야 의원들이 투표에 참여했고, 300명 중 204명의 가결로 탄핵소추가 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비교적 엄격하게 절차를 진행하였고, 내란세력이 저지른 행위와 각종 법 꼼수가 공개법정에서 노출되었습니다.



    그 사이 정치적 공방도 엄청났습니다. 특히 윤석열의 체포영장에 대한 격렬한 저항, 구속 도중 판사의 구속취소 결정 등은 친윤 세력을 부추겼습니다. 일부는 서울서부지법 폭동 침탈까지 저질렀습니다. 헌재의 결정이 지체되면서, 시민들은 불면의 나날을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넉달간의 길고 긴 과정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면서, 각계각층의 열정과 지혜를 모아 시민축제로 승화시켰습니다.



    헌재는 4월4일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선고했고, 국민들은 높은 신뢰를 갖고 이를 수용했습니다. 두달 뒤 새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헌재가 나라를 구했다”고 하지만, 문형배 재판관은 “나라는 국민이 구한 것이고, 재판관은 법적으로 도장을 찍어준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국민이 국회를 구했고, 국회가 국민을 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국민이 헌재를 구했고, 헌재가 국민을 구했습니다.



    지금 형사재판이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군사법정과 여러 민간법정으로 나뉜 채 몇개의 재판부가 관여하는지도 어지럽습니다. 이 재판부에서는 피고인으로, 저 재판부에서는 증인으로 서야 합니다. 재판부마다 처리 속도, 진행 방식이 제각기여서 비판도 거셉니다. 피고인이 검사처럼 나대는가 하면, 변호인들의 엽기적 행태도 돌출합니다. 내란계엄 사태와 재판 과정에서, 사법부는 국민적 신뢰를 크게 잃었고, 거기에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책임이 절대적입니다. 오직 법관 중심에 따른 독선적 운영은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가장 문제의 집단은 검찰입니다. 검찰은 선출되지 않는 정부조직이면서도, 권력기구가 되었습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휘두르면서, 재량권의 남용을 일상화했습니다. 윤석열 집단의 범죄에 대해서는 성역화하고, 반대파에 대해서는 정치적 사냥과 후보 자격 박탈을 꾀했습니다. 검사 출신 대통령하에서는 마침내 검=정 동일체가 되어 형평감과 수치감을 상실했습니다. 현재 검찰에 대한 발본적 개혁은 민주주의 정립을 위해 필수 과제가 되었습니다. 모든 수사·기소 기구들이 군림하는 기관이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조직으로 재편될 것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계엄선포 소식을 듣고 처음엔 수치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런 자가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은 수치스럽습니다만, 내란계엄을 단숨에 극복해낸 것은 민주주의의 노벨상감입니다. 수개월간 대규모 시위를 통해 다채로운 표현을 펼쳐 내고, 폭력이 아닌 평화 시위로 관철해 낸 국민적 저력은 경탄스러운 것입니다.



    2000년대 들어 대통령 탄핵소추가 3번, 그중 2번은 파면까지 되었습니다.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한 것일까요? 탄핵의 전 과정은 정치적 일탈이 아니라, 정상적 헌법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대통령은 5년 내내 성실히 국민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탄핵의 최종심급자는 국회도, 헌재도 아닙니다. 국회가 함부로 탄핵소추할 때는 국민이 선거로써 심판했습니다. 헌재도 최종심판자로서 국민의 뜻을 따랐습니다. 선거에서도, 탄핵에서도, 국민이 주권자이자 최종심판자임을 재확인합니다.



    이번 1년을 경과하면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에 굳건히 뿌리내렸고, 국민이 주인으로서 당당한 역할을 해냈음을 확인합니다. 누구나 케이(K)민주주의의 놀라운 복원력(resilience)을 말합니다. 이 복원력은 그동안 국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써 쌓아 올린 우리의 저력입니다.



    이제부터 정치와 사회 개혁의 방향은 국민이 주인으로서 더 잘 섬김을 받는 체제로 나아가는 데 있습니다. 국가 전반에 걸친 국민 참여와 감시의 제도화를 강화해야 합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무소신·기회주의가 만연한 특권 관료집단(행정, 사법, 군대)이 장기적으로 권력과 이권을 누리며 공직을 사유화해 온 현실이 드러났습니다. 학연·지연·직연의 두터운 연줄망으로 고착된 특권 카르텔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과제가 설정됩니다.



    계엄 철폐, 탄핵, 내란 처벌의 성과는 일부 정치인이나 시민만의 공적이 될 수 없습니다. 국민 모두가 절실한 열정으로 함께 이룬 성취입니다. 다원 사회의 국민은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을 바탕으로 상호 존중의 연대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소수자, 약자, 지방과 수도권, 세대별로 모두 각자의 목소리와 고충이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는 더욱 다양한 소통과 해결의 통로를 마련해야 합니다. 독선과 불통, 입틀막과 처단의 시대를 끝내고, 앞으로는 더 다양하고 풍부한 연대와 서로 존중으로 채워 가야 할 것입니다.



    한겨레



    한인섭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법학). ‘100년의 헌법’, ‘계엄과 내란을 넘어’, ‘가인 김병로’, ‘5·18재판과 사회정의’, ‘배심제와 시민의 사법참여’, ‘권위주의 형사법을 넘어서’ 등을 썼다. 한국 현대사와 민주화에 대한 심층 대담집으로 ‘이 땅에 정의를: 함세웅 신부의 시대 증언’,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 민주화운동 40년 김정남의 진실 역정’, ‘인권변론 한 시대’ 등이 있다. 시민이 주권자로 만들어 가는 헌법과 나라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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