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l 고가연·서수진 글, 이주향 그림, 박효정 기획, 경옥초이, 1만6800원 |
식탁을 제멋대로 벗어난 의자 셋. 엎어져 쏟아져 내리는 물. 그렇다. 엄마, 아빠가 심하게 다퉜다. 집은 적막하고, 나는 울고 싶다.
‘다음날’은 부모가 다툰 다음날, 양육자와 아이의 마음 안팎 풍경을 담아낸 그림책이다. 불 꺼진 방, 고요히 잠든 아이를 양육자 중 한 사람이 물기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이어지는 그의 독백. “엄마랑 아빠랑 싸우는 거 싫지? (…) 어제도 싸우려던 게 아니었는데 집에 오니 엉망이라 화가 났어.”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그가 쓰러지며 마음 안에서 출렁이던 말들을 쏟아낸다. 주워 담지 못할 말들이 줄줄 흘러나온다. ‘나 혼자만 애쓰는 기분이야!’ ‘나 좀 내버려둬!’ 한바탕 쏟아짐 끝에, 가족들은 침묵에 잠긴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나선 출근길. 모든 감각은 흐려진다. 오직 어제의 다툼만이 생생하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도, 사무실에서 업무를 하면서도 엄마와 아빠는 어제의 다툼만 생각한다. 휴대폰을 몇번이고 들었다가 놓는다. 액정 속 ‘짝꿍’이란 이름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메신저로 화해한 이후 부부가 다시 저녁 식탁에 모이면서 양육자의 독백은 끝난다. “우리는 싸우고 화해하면서 같이 사는 거야. 가족이니까.”
그날, 아이의 하루는 어땠을까. 아이도 양육자처럼 서운함-미움-미안함-소중함의 다이내믹한 감정의 동요를 겪었을까. 책을 반대편부터 읽으면 이번엔 아이의 마음이 펼쳐진다. 역시 시작은 암흑이다. “아빠랑 엄마랑 싸울 때 나는 자꾸 눈을 감게 돼. 엄마, 아빠 얼굴이 무서워.” 이 대목을 읽으면 많은 부모들이 뜨끔할 것이다. 싸우는 내 얼굴이 자녀에게 어떻게 보일지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을 테니까. 서로를 탓하는 양육자와 달리, 아이는 먼저 자기를 탓한다.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혹시 내가 잘못한 걸까?” 무력감을 느끼던 아이는 “거인이 되어 아빠 엄마를 혼내주는” 상상을 한다. “오늘은 엄마, 아빠를 꼬옥 안아줄 거야.” 아이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다.
흰 종이에 검은 선과 면으로만 그린 절제된 표현이 부부싸움 다음날의 무거운 공기를 절묘하게 시각화한다. 양육자 간 싸움이라는, 아이들은 자주 겪지만 그림책에서는 그리 자주 다루지 않는 소재를 판타지 없이 다룬 점도 미덕이다. 친밀하기에 더 격렬한 가족 갈등에 대해 대화할 기회를 주는 책이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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