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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아빠랑 엄마랑 싸울 때 나는 자꾸 눈을 감게 돼”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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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다음날 l 고가연·서수진 글, 이주향 그림, 박효정 기획, 경옥초이, 1만6800원




    식탁을 제멋대로 벗어난 의자 셋. 엎어져 쏟아져 내리는 물. 그렇다. 엄마, 아빠가 심하게 다퉜다. 집은 적막하고, 나는 울고 싶다.



    ‘다음날’은 부모가 다툰 다음날, 양육자와 아이의 마음 안팎 풍경을 담아낸 그림책이다. 불 꺼진 방, 고요히 잠든 아이를 양육자 중 한 사람이 물기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이어지는 그의 독백. “엄마랑 아빠랑 싸우는 거 싫지? (…) 어제도 싸우려던 게 아니었는데 집에 오니 엉망이라 화가 났어.”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그가 쓰러지며 마음 안에서 출렁이던 말들을 쏟아낸다. 주워 담지 못할 말들이 줄줄 흘러나온다. ‘나 혼자만 애쓰는 기분이야!’ ‘나 좀 내버려둬!’ 한바탕 쏟아짐 끝에, 가족들은 침묵에 잠긴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나선 출근길. 모든 감각은 흐려진다. 오직 어제의 다툼만이 생생하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도, 사무실에서 업무를 하면서도 엄마와 아빠는 어제의 다툼만 생각한다. 휴대폰을 몇번이고 들었다가 놓는다. 액정 속 ‘짝꿍’이란 이름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메신저로 화해한 이후 부부가 다시 저녁 식탁에 모이면서 양육자의 독백은 끝난다. “우리는 싸우고 화해하면서 같이 사는 거야. 가족이니까.”



    그날, 아이의 하루는 어땠을까. 아이도 양육자처럼 서운함-미움-미안함-소중함의 다이내믹한 감정의 동요를 겪었을까. 책을 반대편부터 읽으면 이번엔 아이의 마음이 펼쳐진다. 역시 시작은 암흑이다. “아빠랑 엄마랑 싸울 때 나는 자꾸 눈을 감게 돼. 엄마, 아빠 얼굴이 무서워.” 이 대목을 읽으면 많은 부모들이 뜨끔할 것이다. 싸우는 내 얼굴이 자녀에게 어떻게 보일지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을 테니까. 서로를 탓하는 양육자와 달리, 아이는 먼저 자기를 탓한다.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혹시 내가 잘못한 걸까?” 무력감을 느끼던 아이는 “거인이 되어 아빠 엄마를 혼내주는” 상상을 한다. “오늘은 엄마, 아빠를 꼬옥 안아줄 거야.” 아이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다.



    흰 종이에 검은 선과 면으로만 그린 절제된 표현이 부부싸움 다음날의 무거운 공기를 절묘하게 시각화한다. 양육자 간 싸움이라는, 아이들은 자주 겪지만 그림책에서는 그리 자주 다루지 않는 소재를 판타지 없이 다룬 점도 미덕이다. 친밀하기에 더 격렬한 가족 갈등에 대해 대화할 기회를 주는 책이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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