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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불멸의 영웅도 평범한 아버지였다 … 전장 밖 이순신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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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린 '우리들의 이순신' 언론 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 다양한 이순신 장군의 초상이 전시돼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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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이 개막 직후부터 북적이고 있다. 주말의 경우 이른 시간부터 전시장에 가족 단위 관람객이 모여들고, 이순신 장군 코스튬을 입은 어린이 관객들이 전시실을 돌아다니며 눈을 반짝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특별전 누적 관람객은 개막 후 6일 만에 2만2400명을 넘어섰다. 통상 특별전 관람객이 2만명을 넘기려면 한 달가량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속도다. 주말 오픈런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어린이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관람객으로 붐빈다. 어린이들에게 이순신이 새로운 히어로로 떠올랐다면, 성인 관람객은 '난중일기' 속 어록 등 이순신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기록을 마주하며 깊은 감동을 받는다는 게 박물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굿즈도 인기다. '이순신 전립(조선시대 무관이 전투나 의식 때 착용하던 모자) 와인마개' '이순신 장검 장패드' 등은 일시 품절된 상태다.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방송인 유재석이 착용한 '두정갑 투구 털모자'도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이순신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기획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순신 관련 전시를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 전문가들은 전시를 즐기는 방법을 크게 3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는 유물에 집중하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과 달리 박물관은 유물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전한다는 관점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순신과 관련한 대규모 사료와 기록들이 최초로 한 공간에서 공개된다는 점이다. 이순신 친필본 '난중일기'를 비롯해 관련 유물 258건 369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보 6건 15점, 보물 39건 43점, 국가등록문화유산 6건 9점 등 이순신 관련 유물이 총망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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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회고록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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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이순신 종가 유물 20건 34점은 서울에서 처음으로 대규모로 공개됐다. 전시를 기획한 서윤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난중일기나 이순신 장검이 단독으로 서울에서 전시가 된 적은 있으나, 이번처럼 전체 유물이 서울로 나들이한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이 소유하다가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에 기증한 '정왜기공도' 병풍 전반부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병풍 후반부와 나란히 전시된다. 이 유물은 정유재란 때 명군이 일본군을 물리친 공을 기념해 제작한 그림 '정왜기공도권'을 바탕으로 후대에 제작된 그림이다. 중국에서 그린 원본을 19세기 일본에서 모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관람 포인트는 전쟁 영웅인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다. 이번 전시는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뿐만 아니라 개인적 고뇌를 통해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난중일기'에는 가족을 향한 그의 염려가 곳곳에 드러난다. '어머님께서 평안하시다고 했다. 그러나 아들 면은 많이 아프다고 했다. 가슴이 지독히 탔다'(1594년 6월 17일)는 기록에서는 그의 효심과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엿볼 수 있다. 아들 면이 세상을 떠난 후 '하느님께서는 어찌 이토록 모지신가. 간담이 타고 찢어졌다. 불쌍한 내 어린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하룻밤이 1년 같다'(1597년 10월 14일)는 기록에서는 절절한 슬픔이 묻어난다.

    이순신이 사용했던 '복숭아 모양 잔과 받침', 난중일기 속 '석양을 타고 돌아왔다' '달빛은 낮과 같이 밝았다. 출렁이는 물빛은 하얀 비단 같았다' 등의 구절은 그의 서정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리더십을 보여주는 자료도 풍부하다. 이순신이 임금에게 올린 장계(조선시대 장수나 지방관이 왕에게 보고한 공식 문서) 61편을 후대에 베껴 써서 엮은 '임진장초'가 대표적이다. 임진장초에는 승리의 순간에 도취되기보다 노비에서 장수까지 누가 어떤 공을 세웠는지 빠짐없이 보고한 내용이 남아 있다. 선조가 명나라 진린 제독에게 이순신에 대해 묻자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과 찢어진 하늘을 꿰매고, 흐린 태양을 목욕시킨 공로가 있는 분"이라고 답한 대목도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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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장군의 장검. 1592년 4월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 의장용 칼이다.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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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관람 포인트는 임진왜란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서로 다른 시선을 유물을 통해 비교한 점이다. 한국에서 이순신은 민족 영웅으로 자리 잡았으나, 일본 내부에서 제작된 임진왜란 관련 회화는 각기 다른 해석과 기억을 담고 있다. 일본에서 신격화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초상화와 목상 등도 전시에 포함돼 있다.

    일본 다이묘(봉건 영주) 나베시마 나오시게 가문이 소장해온 금채 '울산왜성전투도' 병풍은 국내에서 처음 전시된다. 일본 특유의 금박채색화로 조선의 도원수 권율과 명나라 장군 양호가 이끄는 조명연합군이 울산왜성을 포위해 일본군을 고립시키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일본, 명나라의 갑옷과 무기도 비교할 수 있다. 이순신의 장검뿐만 아니라 류성룡의 갑옷과 투구, 곽재우의 장도 등 당대 인물들이 사용한 무기가 공개된다. 류성룡은 당시 영의정을 지내고 '징비록'을 저술해 임진왜란의 상황을 기록했다. 곽재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키고 붉은 옷을 입어 '홍의 장군'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일본 유물로는 다치바나 무네시게 가문의 군사들이 썼던 투구와 창, 금박장식투구 등이 전시된다. 명나라의 다양한 군용 도검도 선보인다. 서 학예연구관은 "그동안 한일 간 금기시되는 게 많았는데, 다르게 전시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정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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