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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23년간 입었던 법복 벗은 남자…변호사 대신 ‘악마 판사’ 이야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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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프로보노’로 돌아온 문유석 작가

    인기 끌었던 법정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악마판사’ 후
    긴 슬럼프 늪에 빠졌지만
    내가 잘 아는 이야기로 컴백
    불안을 삶의 요소로 승화한
    에세이 ‘나로 살 결심’도 출간


    매일경제

    전업 작가로서의 경험과 소회를 담은 신간 에세이 ‘나로 살 결심’을 출간한 문유석 작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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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23년간 입었던 판사 법복을 벗었다. 변호사 개업 대신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다. 퇴직 전후로 법정물인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2018년 방영)’ ‘악마판사(2021년 방영)’ 각본을 쓰며 자신감도 충만했다.

    그러나 도전의 예봉이 꺾이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압박감에 짓눌려 쓸 수 없는 나날이 많아졌다. 다달이 들어오던 월급은 끊겼고, 불안은 영혼을 빠르게 잠식했다. 잠이 오지 않았고, 흰 머리는 늘었다. 슬럼프였다. 늪에서 나오는데는 수 년의 시간이 걸렸다. 최근 슬럼프 극복 과정과 전업 작가가 된 이후의 소회를 담은 신간 에세이 ‘나로 살 결심(문학동네 펴냄)’을 출간한 문유석 작가의 이야기다.

    그는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슬럼프 경험에 대해 “불안을 삶의 당연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 제가 찾은 방법”이라며 “삶의 큰 전환을 겪은만큼 저의 경험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집필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매일경제

    전업 작가로서의 경험과 소회를 담은 신간 에세이 ‘나로 살 결심’을 출간한 문유석 작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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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작가가 겪은 슬럼프의 이유는 숱한 거절이었다. 그동안 선보였던 법정물 대신 초능력 히어로물을 구상하고 각본을 써내려갔지만 이곳 저곳에서 거절이 반복됐다. 2015년 ‘개인주의자 선언’ 출간 후 글쓰는 판사로 명성을 날리던 문 작가에겐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작가인 자신에 대한 회의감도 엄습했다. 집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자택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글을 쓰기는 커녕 즐기던 독서도 기피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망했다고 생각하며 불안에 떨던 그에게 돌파구가 된 건 ‘아무거나 써 보자’는 마음이었다.

    “불안을 회피하려는 노력은 헛된 것이었습니다. 슬럼프 시기에는 막연하게 거창한 고민을 하기 보다 ‘쓰레기라도 좋으니 뭐라도 매일 한페이지만 쓰자’는 마음으로 무조건 일을 시작이라도 하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문 작가가 슬럼프에서 길어올린 수확은 또 있다. 더 위대하고 뛰어난 이야기에 매달리는 대신, 자신이 잘 할 수있는 스토리에 집중해야 겠다는 마음 가짐이다. 비상한 작품으로 대중을 사로잡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 판사 시절 천착했던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민과 경험을 녹이겠다는 뜻이다. 슬럼프의 늪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도출해낸 ‘나로 살 결심’이었다. 오는 6일 tvN에서 방영을 시작하는 공익전담 변호사의 이야기 ‘프로보노’의 각본은 그와 같은 결심에서 집필됐다.

    “처음엔 남들이 못하는 ‘수준 높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허영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매일 경험하면서, 이제는 소박해도 좋으니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게 됐어요. 그 결과물이 ‘프로보노’입니다.”

    고용 불안 속에 모두가 ‘인생 이모작’을 꿈꾸는 시대. 바닥을 치고 튀어오른 문 작가에게 두번째 삶을 기획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그의 신간 제목처럼, 길잡이가 되어줄 건 자기 자신 뿐이라는 취지의 답이 돌아왔다.

    “세상의 변화 방향이나 어떤 분야가 장래에 유망할지를 고민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밑바닥까지 깊숙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지, 그 일로 인한 어려움을 얼마나 잘 감당할 수 있는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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