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용가 김순자씨가 2024년 9월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중 진혼무를 추고 있다. 경향신문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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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9일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극우 참정당(參政黨)의 요코하마 집회에서 한 지지자가 외국인 차별 반대 팻말을 내건 시민에게 ‘주고엔 고짓센’을 발음해 보라며 시비를 걸었다. ‘주고엔 고짓센(15엔50전)’은 1923년 9월 일본 간토(關東)대지진 직후 일본 군경과 자경단이 일본인이 아닌 이들을 색출하는 데 쓴 말이다. 대지진의 혼란 속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가 번지자 일본 군경과 자경단은 조선인을 닥치는 대로 체포·살해했다. ‘주고엔 고짓센’에 섞인 탁음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숱한 조선인들이 끌려가 잔혹하게 학살됐다. 그 흑역사를 모르는 일본인들이 100여년 전 조선인들의 생사를 가르던 말을 함부로 쓰고 있는 것이다.
간토대지진 6개월 뒤 당시 요코하마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쓴 작문들이 100년 만인 2023년 공개됐다. 일본 TBS가 취재한 영상을 보면 작문 중에는 “조선인이 도망가자 어른들이 쇠몽둥이를 들고 ‘조선 정벌’을 하러 갔습니다” “쇠몽둥이로 죽이거나 죽인 조선인을 감옥 앞의 바다에 버렸습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당시 조선인 학살을 ‘조선 정벌’로 지칭했음을 알게 한다. 요코하마 시내 나카무라(中村)다리로 ‘조선인을 끌고 와 죽인 뒤 다리 밑으로 버렸다’고 쓴 글도 있다. 아이들의 가감없는 글에서 당시의 참상이 생생히 드러난다. 아이들 글뿐만 아니라 당시 진상을 기록한 공문들도 남아 있다. 2023년 가나가와현 지사가 관내 조선인 학살 사건을 내무성에 보고한 자료, 조선인 학살 육군성 보고 문서가 공개됐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발뺌했다.
학살의 진상이 묻힌 데는 한국 정부와 정치권의 소극적인 태도도 한몫했다. 2014년 19대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이 발의됐으나 이후 번번이 폐기됐다. 지난 2일 ‘간토대학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학살 102년 만이다. 정부는 국무총리 소속의 ‘간토대학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위원회’를 신설해 학살 경위, 피해 규모, 일본 정부의 조직적 개입 여부 등을 조사하게 된다. 이제야 영령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있게 됐다.
서의동 논설실장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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