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
미국 월가에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하지 않으면 해고된다"는 압박이 경영진을 옥죈다. 기업들은 매출 부진을 AI 혁신으로 포장하고, AI 도입에 주가는 급등한다. 이른바 AI를 명분으로 한 구조조정, AI 워싱이다. 올해 들어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빅테크 대기업들은 11만명의 근로자들을 해고했다. 이들의 인력조정 중 어느 정도가 진짜 AI 때문인지, AI 워싱인지는 분명치 않다.
AI 워싱은 한국에는 통하지 않는다. 강성 노조가 AI를 견제하는 AI-레지스탕스(AI-Resistance) 구조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원청 노조의 단체협약이 내성(內城)이라면, 하청 노조를 위한 노란봉투법은 외성(外城)과 같다. 성문 안 진입이 어려운 AI는 성문 밖의 청년고용에 타격을 입힌다. AI를 핑계로 근로자를 해고하려는 기업도, 고용보호 장벽만 높이는 노조도 미래가 어둡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과 AI가 함께 묶고 달리는 '2인 삼각경기'에 대비하는 일이다. 회사 내에서 일잘러(일을 잘하는 근로자)들은 AI 에이전트를 활용하여 며칠 걸리는 프로젝트를 1시간 안에 끝낸다.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들은 근로자들의 AI 스킬을 고과평가에 반영하기도 한다. 일자리에서 AI를 잘 활용하는 일잘러들의 생산성은 높아지지만, AI에 익숙지 않은 근로자들의 일(task)부터 AI에 의해 대체되다가 점차 자리(job)마저 위협받게 된다. AI 에이전트 시장은 과점구조로 바뀌어 오픈AI, 구글, 아마존 등 경쟁업체들의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AI 기술이 아무리 앞서 나가도 2인 삼각경기에서 근로자가 AI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창의적 사고와 검증 능력이 약화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10년 뒤 세계 GDP의 10%를 AI가 창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첨단 GPU를 기반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AI-트윈 시스템을 통해 모든 공정을 가상환경에서 검증해 수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불량률을 낮추게 된다. 근로자들은 스마트폰에 내장된 AI를 활용한 모의훈련을 하고, 영상 기반 질의응답으로 AI와 상호 학습한다. LLM AI는 과거 데이터로 반복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하이브리드 추론형(Neuro-Symbolic) AI는 돌발형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근로자 역량을 강화해 간다. 생산은 AI 스스로 조정하는 체제로 바뀌고, 근로자들은 설계, 감독, 조율의 역할을 요구받게 된다. AX(AI 대전환) 시대에 근로자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을 넘어 해석, 관리, 윤리, 커뮤니케이션이 더 필요하게 된다.
AI와 경직적 노동법, 구태 노사관계는 상극이다. AX 시대에 기술변화에 맞춰 일하는 방식은 유연하게 변화해야 하지만, 우리 노동시장은 내부·외부 유연성, 임금유연성의 혈도가 막혀 있다. AI 도입은 취업규칙 변경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에는 근로자 과반의 동의가 있거나,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가능했다. 그러나 2023년 대법원 판례에서 사회통념상 합리성 요인은 삭제됐으며 최근 개별 근로자 동의를 요하는 경우까지 증가했다. 즉 기업이 AI를 도입하려 해도, 노동법은 이미 AI에 대한 제동력을 키워왔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노동이 거부하면 산업은 정체된다. AX 시대의 노동개혁은 기술환경 변화에 맞춰 일하는 방식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근로조건 결정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기존의 오프라인 직업훈련 시스템을 현장 중심 AI 온라인 시스템(AX-TVET)으로 개혁해 근로자들이 자율적으로 기술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동개혁이 전제돼야 한국 경제는 저생산성·저성장의 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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