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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임의진의 시골편지]저슬의 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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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숨가쁘게 달려온 올해도 끄트머리.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 나오는 명대사를 기억해. “오늘은, 당신의 남은 인생의 첫날이랍니다.” 이름 모를 시인도 비스무리 노래했지. “춤춰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입지 않은 것처럼. 살아라! 오늘이 그대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내년이라고 특별하게 달라질 게 없겠지. 그래도 새해에 대한 기대를 가져보는 게 연말연시 들뜬 마음가짐이렷다. 배고픈 원시인들은 조그만 바늘로도 코끼리를 쓰러트렸다는데, 다음 3가지 방법을 쓴대. 쓰러질 때까지 바늘로 콕콕 쑤시기. 한 번 쑤신 뒤 쓰러질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기. 녀석이 쓰러져 죽을 때쯤 그때 한 번 콕 쑤시기. 셋 다 허풍에 가까우나 ‘힘 닿는 데까지 해보는’ 용기 하나는 가상해라. 용기를 내어 우리 살아낸 한 해.

    제주에선 겨울을 ‘저슬’이라 한대. 산간오지 눈이 내리고 발목까지 푹푹 빠지면 가만히 움집 아랫목에 앉아 동치미에 고구마를 먹으면서 견디면 된다. 또 제주에선 밤새 몰래 내리는 눈을 ‘아이모른눈’이라 한대. 아이모른눈, 참 예쁜 말이구나. 눈에 갇히면 포르릉 날아온 새조차 그립고 반갑다. 심심할 때 새처럼 헌걸차게 노래하는 재즈를 찾아 들으면 ‘간’이 딱 맞는다. 청년 시절 객기 삼아 들었던 알쏭달쏭 재즈. 환갑 줄을 바라보며 듣노라니 재즈가 없이는 남은 인생을 어찌 사누 싶을 정도로 정이 담뿍 간다. “들어라! 처음 재즈를 들은 그밤처럼.”

    사라 본과 트럼페터 클리포트 브라운이 노래하는 ‘새들의 자장가’, 아이모른눈이 내리는 밤에 딱이다. “그대가 한숨 쉴 때 줄곧 듣는 노래죠… 새들의 자장가 소리가 작아지면 달콤한 키스를 나눈 뒤 우리 떠나요. 새들의 섬에서 하늘 높이 날아올라요.”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철없이(?) 분방하게 부른 버전도 근사하다. 철없는 사건 사고의 시절도 인생엔 있는 법이다.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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