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체는 ‘평가원장 사퇴’를 주장했고 결국 평가원장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임을 했다. 그러나 이번 영어 영역 난이도 조절 실패 책임을 전적으로 출제본부나 평가원장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6월과 9월 모의평가로 수험생 수준을 가늠한다고 해도 이들이 실제 수능 응시 집단과 완전히 동일한 집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수능에는 n수생 등 7만~8만명이 추가로 합류해 오차가 발생한다. 그래서 문제 출제자 사이에서는 ‘시험 난이도는 귀신도 모른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수능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일례로 영어 난이도 조절은 실패했지만, 과목 간 균형을 맞추기 어려운 탐구 영역에서는 과목 간 점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그러니 난이도 조절 실패로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출제 과정에서 규정 위반이나 비리가 없는데도 평가원장이나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과연 옳은지도 의문이다.
필자는 난이도 조절 실패 원인을 개인보다는 사교육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본질이 흐려진 수능 출제 구조에서 찾고 싶다. 평가원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보도 자료를 내고 “학교 현장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사교육 연관성을 배제하면서도 학교 교육의 범위 안에서 문제 출제가 이뤄지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과연 수능이 사교육 영역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즉, 형태가 어떻게 되든 사교육 연관성을 배제하면서 ‘순정 문제’를 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공교육으로 익힌 영어 문제 풀이 방법과 사교육에서 배우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이상 이는 불가능하다.
수능 초안 출제 작업은 실제로 일주일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되며 1·2차 검토도 매우 촉박하게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출제본부는 사교육 연관성을 배제하고자 시험지 인쇄 직전까지 사설 모의고사와 유명 사교육 강사들의 파이널 교재를 일일이 살펴보며 중복을 걸러낸다.
이 과정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사교육 교재와 유사한 문항이 출제됐다고 알려지면 사회적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이때 교체된 문항은 아무래도 시간상 심도 있게 검토하기 어렵다. 이는 결국 난이도 조절 실패, 문항 오류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밖에 현재 시행되는 폐쇄형 합숙 출제 방식이라는 수능 자체의 출제 시스템과 함께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를 혼용하는 현행 수능 평가 체계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교육 억제라는 명분으로 분리해 놓은 영어 절대평가는 처음부터 잘못 설계된 제도라는 점도 비판받아야 한다. 평가 체계에 어색하게 영어를 절대평가로 전환했지만, 오히려 절대평가가 영어 사교육 팽창과 수험생 혼란만 초래하고 있다.
때마침 국가교육위원회는 12월 초 차정인 위원장을 특위 위원장으로 하는 ‘대학입학제도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특위는 앞으로 6개월간 본격적인 대입 제도 개선 논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고등학교, 교육청, 대학 등 교육 현장 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특위 위원들 면면을 볼 때 기대하는 바가 매우 크다.
특위는 서·논술형 수능, 수능 이원화, 수능 절대평가 등 수능 개선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 의견도 수렴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특위는 무엇보다 3.11 쇼크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또 소위 교육계 ‘선수’들이 각자 입장만 반복하다 6개월을 보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특위가 수능 환골탈태를 이뤄내기를 절실히 기대해본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 |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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