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의 30만톤 시범 플랜트
수소 공급과 원전 활용이 관건
제조업을 위한 '제2 창업' 필요
수소 공급과 원전 활용이 관건
제조업을 위한 '제2 창업' 필요
경북 포항 포항제철소에서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된 ESF 전기용융로 출선 장면.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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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鐵)은 인류 문명의 뼈대이다. 자동차, 조선, 건설 등 핵심 산업도 모두 철에 의존한다. 그 단단한 뼈대가 기후위기 앞에서 '재탄생'을 준비하고 있다. 철강 산업은 한국 연간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6분의 1을 차지한다. 이 분야의 변화 없이는 국가적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 포스코가 연산 30만 톤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시범 플랜트 건설에 착수한 건 중요한 이정표이다.
물론 쉽지 않다. 100년 넘게 활용해온 고로(용광로) 방식은 효율이 우수하고 품질 측면에서 유리하다. 석탄 가공품인 코크스 하나로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환원'과 이를 녹여 쇳물을 만드는 '용융'을 동시에 해결했다. 반면, 수소환원제철은 이 두 과정을 분리한다. 수소로 환원하고, 전기로에서 전기로 녹인다. 공정이 나뉘고 설비가 추가되니 투자비 부담과 에너지 비용 상승이 겹친다. 소비자들이 수소환원제철에 몇 배의 가격을 지불하지 않으므로 원가는 유지하면서 공정을 바꿔야 한다.
철강업계가 생존 가능한 청정 수소 가격의 마지노선은 1㎏당 2,500원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태양광 발전 원가가 가장 낮은 중동에서 1㎾h당 15원, 즉 국내 산업용 요금의 10분의 1 이하로 전기를 확보한다고 가정해보자. 수전해 에너지 비용, 설비비, 기체 수소를 운송 가능한 암모니아로 바꾸는 변환 비용, 항만 선적비를 더하면 현지 출고 가격은 3,500원 수준이다. 여기에 해상 운송비와 국내에서 암모니아를 수소로 변환하는 비용까지 더하면 최종 도입가는 5,000원에 육박한다. 목표의 두 배 수준이며, 이 격차를 어떻게 메우느냐가 미래 제철 산업의 승부처다.
투 트랙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해외 청정 수소 공급망의 수직 계열화다. 단순히 수소를 사 오는 구매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해외 거점에 대규모 생산 기지를 구축하고 설비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로 생산 단가를 낮추고, 수소-암모니아 변환 효율을 높이는 혁신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변환 비용 없는 액화수소 운송 기술 선점과 실증도 필요하다.
둘째, 원전의 전략적 활용이다. 수소를 확보한 뒤에는 철을 녹일 전기가 필요하다. 2025년 기준 국내 고로 생산량을 모두 전기로로 전환한다면, 1.4GW급 원전 4기가 필요하다. 이를 태양광으로만 충당하려면 국내 설치 태양광 설비 전체와 맞먹는 30GW 규모가 추가로 필요하다. 밤낮없이 가동되는 제철소는 원전과의 상성이 좋다.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수소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일정량은 반드시 국내에서 조달해야 하는데, 이때 고온가스로(HTGR)와 같은 차세대 원전이 해답이 될 수 있다. 전기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고온의 폐열로 수전해 수소를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설비를 제철소에 건설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수소환원제철은 단순한 공정 교체가 아니라 대한민국 제조업을 위한 ‘제2의 창업’이다. 비용 이슈와 전력 난제는 전 세계 철강사들의 공통 고민이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우리에겐 위기이자 기회다. 정부가 'K스틸법' 등으로 지원하고, 기업이 끈기 있게 투자하고 기술 혁신을 이룬다면 해 볼 만하다. 1,500도의 쇳물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위기를 녹여 새 기회를 주조해 낼 대한민국 철강의 미래를 기대한다.
권효재 COR Energy Insigh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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