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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노트북을 열며] 청년 구직난보다 심각한 무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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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김선미 경제부 기자


    자조(自嘲)엔 일종의 무력감이 깔려있다. 청년 취업 준비생 10명 중 6명이 사실상 구직 활동에 손을 놓았다(소극적 구직 상태)는 내용의 기사에 “나 같은 사람이 60%나 된다니 묘하게 다행스럽다”는 댓글이 달렸다. 청년 취업난이 하루 이틀 된 문제는 아니지만, 안도와 자조가 섞인 이 댓글에서 청년들의 집단적인 무력감이 읽혔다.

    자료를 보니 무력감이 더 깊이 느껴진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 10~11월 전국 4년제 대학 4학년생과 졸업생(유예·예정자 포함) 약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취업 인식도 조사다. ‘적극적으로 구직하지 못한 이유’로 응답자 58%가 일자리 부족을 꼽았다. ‘구직 활동을 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것 같아서(22%)’가 뒤를 이었다.

    실제로 적극적으로 구직 중인 취업준비생도 입사 지원서를 13.4번 내야 서류 전형에서 2.6회 통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보다 지원 횟수는 두 배가량 늘었고 서류 합격률은 3%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중앙일보

    9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한 구직자가 취업 관련 문서를 작성하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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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고용 한파’ 같은 제목의 기사는 수십 년 전부터 있었다. 다만 만성 구직 실패로 집단적·구조적 무력감이 확대되고 아예 일자리를 구할 의욕까지 잃는 청년이 는다는 게 문제다. 지난달 국가데이터처 조사를 보면, 올 3분기 기준 20·30대 ‘쉬었음’ 인구(73만5000여명)는 2003년 집계 시작 이후 가장 많았다. 지난해 한국은행 고용분석팀은 “쉬었음 인구는 노동시장에서 영구적으로 이탈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국가적 손실로 이어지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당장 노동 공급이 줄어들 뿐 아니라 청년기에 경험을 쌓아 중년기에 노동생산성을 극대화할 기회도 사라진다. 결혼·출산도 밀리거나 포기할 확률이 높아져 저출생, 인구 감소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8월 한국경제인협회는 5년 동안(2019~ 2023년) 쉬는 청년 인구 증가로 국가가 입은 경제적 손실이 44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1990년대 거품 경제 붕괴를 겪었던 일본을 보면, 당시 취업에 실패한 자녀들이 여전히 노부모에 의존하는 ‘노노(老老) 부양’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청년 구직난은 원인도, 그에 따른 해결책도 복잡하다. 산업 구조 변화, 노동시장 경직성, 일자리 미스매칭, 정년 연장과의 연관성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확실한 건 단순 직업 훈련, 채용 장려금 같은 얕은 대책으론 지금의 공백을 메울 수 없다는 점이다.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바로잡기 어려워진다. 국가가 청년들의 무력감을 막는 것에 명운이 달려있다는 생각으로 당장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김선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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