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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김성재의 마켓 나우] 대통령과 연준의 ‘궁합’이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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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관세 이야기』 저자


    1976년 미 대선에서 여당인 공화당 제럴드 포드 후보는 서부에서 선전했지만 남부를 독식한 지미 카터 후보에게 석패했다. 카터의 승리 비결은 참신한 이미지와 온건한 정책이었다.

    19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로 사임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한 포드 부통령은 닉슨을 사면해 충격을 주었다. 유권자들은 워싱턴 정가의 협잡에 진절머리가 났다. ‘정직한 아웃사이더’를 자처한 카터가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 텃밭인 노동자와 중산층이 대거 카터에게 투표했다. 카터도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재정지출을 늘리며 기대에 부응했다. 정책 초점을 완전고용과 경기부양에 맞췄다. 나아가 텍스트론의 CEO였던 윌리엄 밀러를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에 임명했다. 순수 기업인 출신의 연준 의장은 처음이었다. 밀러는 실물경제를 상징하는 메인스트리트의 이해를 대변해 고금리 정책에 반대했다. 금리 인상을 미루다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초래한 아서 번스 전임 의장보다 더 강경했다.

    1976년 말 5%까지 떨어졌던 물가상승률이 7%를 돌파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인플레이션은 오일쇼크나 과도한 규제 같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만큼, 통화정책은 물가 잡기에 소용이 없다고 판단했다. 카터도 동조했다.

    정부는 산업 규제 철폐와 가격 통제 완화를 추진했다. 금융시장의 자율성도 확대해 성장과 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했다. 문제는 시장의 반응이었다. 월가는 밀러 의장을 믿지 않았다. 물가가 빠르게 올랐지만 대응은 굼떴기 때문이다.

    연준 내부에서도 이견이 팽배했다. 금리 결정에서 반대표가 쏟아졌고, 한때 6%대로 하락했던 장기국채 금리가 2년 만에 9% 위로 솟구쳤다. 채권시장이 인플레이션에 경계감을 드러낸 것이다.

    시장은 물가 안정을 수호하는 ‘자경단’처럼 채권을 매도하며 경고를 보냈다. 결국 1979년 인플레이션이 다시 두 자릿수에 진입했다. 카터와 밀러의 통화 경시 정책에 대한 사형선고가 내려진 셈이었다.

    카터는 밀러의 반대편에 서서 강력한 금리 인상을 주장했던 폴 볼커 뉴욕 연방준비은행장을 후임 연준 의장으로 임명했다. 볼커 의장은 기준금리를 21%로 올려 물가를 잡았지만, 혹독한 경기 침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카터의 재선도 물 건너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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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언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측근 인사를 차기 연준 의장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의 재집권을 전후로 국채 금리는 4%를 웃돌며 고공행진 중이다. 경기 둔화 속에서도 채권 매도세가 본격화하자 시장의 자경단이 재가동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관세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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