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 논설주간 |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에 나오는 이야기.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이 델포이 신전에 황금 예물을 바치고 물었다. “페르시아를 공격해도 좋은가?” 신탁을 받은 무녀(피티아)가 전했다. “크로이소스가 할리스강(리디아와 페르시아의 국경, 현재 키질이르마크강)을 건너면 대국을 멸망시킬 것이다.” 고무된 왕은 페르시아와 일전을 치렀으나 대패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크로이소스가 델포이 신전에 따졌다. 무녀가 답했다. “멸망한다는 대국은 페르시아가 아니라 리디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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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법왜곡죄, 권력 개입 위험
법의 보편성 흔드는 특별재판부
특정인 겨냥한 법, 특정인 위한 법
정의 독점 선민의식의 발로인가
신탁의 모호함과 인간의 오만(휴브리스)을 꼬집는 일화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왜곡죄’는 이 신탁과 닮았다. ‘고의 왜곡’ ‘공소권을 현저히 남용’ 같은 모호한 단어들로 점철됐다. 사법체계를 담당하는 판사, 검사, 수사관들에게 위축 효과를 낳기에 충분하다. 불명료한 단어의 해석은 결국 권력의 몫이다. 모호함은 곧 권력의 공간이 된다.
내란전담재판부 역시 다르지 않다. 신속과 효율이라는 명분 뒤에는 정치적 필요가 숨어 있다. 재판부 무작위 배당은 사법체계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첫 단계다. ‘특별’에서 ‘전담’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특정 사건을 위한 법정이란 본질이 달라지진 않는다. ‘전담재판부’를 지정하는 행위 자체가 재판 결과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압력이다. 내외의 반대와 우려에 부닥쳐 일단 유보했으나 정청래 대표와 추미애 의원 등 여당 강경파들은 기어코 밀어붙일 태세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2심부터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하겠다는 생각이다.
여권의 이런 사법부 압박은 결국 윤석열 전 대통령이라는 특정인을 겨냥한 것이다. 윤석열뿐 아니라 ‘공범’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들은 한 돌출적 인간이 불러일으킨 갑작스러운 폭풍에 휩쓸려 들어간 파생적 책임자들이다. 법이 갖춰야 할 요건 중 하나가 보편성이다. 아무리 악인이라도 보편적 절차를 통해 심판해야 공동체가 그 결과를 수긍할 수 있다. 신속하고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해서 법의 보편성을 흔들면 사법은 결국 권력의 시녀가 되고 만다. 물론 나치 청산처럼 반인도적 범죄의 단죄를 위해 법의 일반성이 일시 유보되는 특수한 시대적·사회적 상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이 아무리 어이없고 무도하다고 해도 수백만 명을 학살하며 비인간성의 극치를 보여준 나치와 동일시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여권은 윤석열과 극단의 대립점에 있는 ‘또 한 사람’을 위한 법을 만들려 한다. 이번에는 그 목적이 응징이 아니라 보호다. 재임 중 대통령에 대한 재판 중단은 국정 안정을 위한 법원의 현실적 조치다. 여당은 이를 넘어서 대통령 재직 중 모든 형사재판을 정지하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를 삭제하거나, 당선 무효형의 기준을 벌금 1000만원으로 상향하는 법안 추진도 마찬가지다.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는 특정인을 위한 법체계 흔들기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응징이든, 보호든 개인 맞춤형이 되면 법은 누더기가 된다. 천신만고 끝에 이룬 선진국 이미지에도, 어렵게 회복한 민주주의의 이름에도 먹칠을 할 수 있다.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키케로는 “우리는 자유롭기 위해 법의 노예가 된다”고 했다. 법이 자유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 맞춤형 법 제정과 운용은 자제돼야 한다. 법이 특정인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 그 법의 공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근대 헌법 국가가 법을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규범으로 설계해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당 강경파들은 사법부나 검찰, 혹은 잔존한 계엄 세력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으므로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권한으로 사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역사 속에서 흔히 봐왔던 ‘방어적 민주주의’와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하지만 시대착오적 계엄 세력이 과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현실적 힘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오히려 퇴행적 행태로는 정치적 확장이 어렵다는 사실을 지금 국민의힘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위협을 느낀다면 둘 중 하나일 공산이 크다. 대단한 착각이거나, 다른 목적으로 위기의식을 이용하고 있거나.
이 대통령은 윤석열의 계엄이 불러일으킨 혼란을 수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할 적임자로 국민이 선택했다. 임기를 시작하며 통합을 강조했던 것은 이런 기대감의 반영이었다. 그러던 대통령 입에서 요즘은 그 단어를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오히려 “개혁은 가죽을 벗기는 일” “불합리한 구조를 정상화하려면 마찰을 감수해야 한다”는 등 발언의 포인트가 달라졌다. 사실상 사법부 압박에 힘을 보태는 모양새다. 사법부 독립을 흔드는 여권 의식의 저변에는 ‘우리가 정의의 신탁을 독점하고 있다’는 선민의식이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그 속에서 이미 거대한 균열의 씨앗이 자라고 있는지 모른다.
이현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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