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덕 건설부동산부장 |
"내년에도 서울 집값이 오를까요?" 연말이 되니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다. 이럴 때는 보통 질문자의 집 소유 유무에 따라서 맞춤 답변을 해줄 수밖에 없다. 자가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오기 전에는 서울 집값이 떨어지기 어렵다"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올해만큼 오르지는 않을 것 같다"고 답한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적당히 듣기 좋은 얘기인 셈이다.
사실 집값은 장기적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심지어 조선시대부터 그랬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흥미로운 논문이 최근에 나왔다. '조선후기 한성부 가옥매매의 양상과 매매가격 변동(송철호, 2025년 10월)'인데 서울역사발물관이 소장한 한성부 토지·가옥 매매문서를 바탕으로 가격 변동을 연구했다. 여기서 소개할 부분은 당시 상류층인 회화정동(현 중구 회현동) 사대부 가옥의 집값 변동이다.
종실의 후손이 살던 곳으로 추정되는 이 집은 1724년(영조 즉위년)부터 1893년(고종 30년)까지 19차례 매매됐는데 첫 거래인 1724년에는 은자 300냥에 팔렸다. 4번째 거래가 체결됐던 1777년까지 은자 300냥으로 가격상승이 없었던 이 집은 9번째 거래(1792년) 때 은자 400냥, 10번째 거래(1801년)에서는 은자 550냥으로 가격이 올랐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10번째 거래다. 기존 매매 기록에는 와가(기와집) 22칸이었는데 24칸으로 확장됐다. 지금으로 따지면 리모델링 확장으로 가격이 오른 셈이다. 이 집은 11번째 거래(1803년) 때 와가 20칸으로 축소됐고 집값은 은자 500냥으로 다시 내렸다.
1803년 거래까지는 집값을 은자와 전문(엽전)이 병행해 치렀는데 이후부터는 모두 전문으로 거래됐다.
12번째 거래가 있었던 1820년 전문 1500냥이었던 집값은 가격변동이 없다가 16번째 매매가 체결된 1845년 전문 1800냥으로 뛰었다. 가격이 본격적으로 뛴 것은 가옥규모가 40칸이 되면서부터다. 와가 40칸으로 규모가 커지면서 17번째 거래(1864년)에는 집값이 전문 4300냥으로 치솟았다. 18번째 거래(1872년)에는 와가 27칸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집값은 전문 3900냥으로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매매가 이뤄진 1893년은 다시 와가 28칸으로 소폭 커졌는데 매매가격은 기존 대비 7배 이상 오른 2만8000냥으로 치솟았다. 지난 20년간 서울의 집값 상승도 못 따라갈 폭등이다. 18번째 거래에서 이 집을 샀던 조상님은 집테크에 크게 성공하셨던 셈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강남 어딘가로 추정되는 이 집은 장기적으로 규모가 커졌지만 집값의 상승폭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논문의 저자가 당시의 평균 환율을 적용해 전문으로 환산한 결과 1724년 700냥에서 1893년 2만8000냥으로 집값이 3800% 상승한 것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도 집값은 장기적으로 상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공식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도 서울 부동산 급등에 대한 고민이 보인다. 중종실록에는 당시 우의정 성희안이 "나라의 도읍이 설치된 지 백여년이 되어 거주하는 사람이 조밀하므로, 성 안은 한치의 땅이 금과 같습니다"라는 기록이 나올 정도다. 영조실록에는 한양에 발령난 관리들이 집세가 너무 비싸 하소연했다는 내용도 있다.
앞서 논문에는 17세기 한성부의 집값 하락을 거론하면서 인조반정,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경신대기근 등 '거시적 상황이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준 결과'로 설명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나 금융위기 같은 글로벌 악재가 아니면 집값이 내리기는 쉽지 않다. 정상적인 경제상황에서 집값을 안정시키는 방법은 공급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시키는 정책적 준비는 다 돼 있다"고 했다. 10·15대책 같은 것이 나오면 안 된다. 모두가 무릎을 탁 칠 만한 회심의 공급대책이길 바란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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