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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6 (화)

    [심찬구의 스포츠 르네상스] 2025 스포츠 산업 뒤흔든 기술·자본·플랫폼, 인간의 역할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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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가 규칙 바꾸고, 거대 펀드가 투자하며, 유통의 중심은 OTT로

    하지만 방향과 의미를 만드는 건 인간… 땀, 함성, 승부는 여전해

    2025년은 정치, 경제, 기술이 동시에 요동친 해였다. 세계 곳곳에서 정치적 분열이 고조되고, 고금리와 공급망 재편이 경제를 압박했다.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기술 혁명은 노동, 교육, 문화의 토대를 빠르게 바꿔 놓았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인간 역할 축소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커졌다. 스포츠는 이러한 시대상을 가장 먼저 투영하는 영역이다. 가장 인간적이면서 기술, 자본, 플랫폼의 충격을 가장 먼저 흡수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2025년 스포츠에서 가장 도드라진 변화는 기술이었다. 글로벌 스포츠 기술 시장은 2025년 343억달러에서 2030년 687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중 AI 부문은 76억달러에서 269억달러로 급증하며, 연평균 28.7%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스포츠 산업의 DNA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AI의 발전으로 경기 규칙과 운영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축구의 반자동 오프사이드, 테니스·배드민턴의 AI 라인콜, 야구의 로봇심판은 기술이 스포츠의 룰을 바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수의 몸 상태는 실시간으로 데이터화되고, 전술은 AI가 시뮬레이션하며, 스카우팅도 알고리즘에 의존한다. 팬들은 경기 종료 직후 자동 생성되는 하이라이트를 먼저 소비하고, 숏폼이 스포츠 콘텐츠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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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 야구부터 프로야구까지 도입된 ABS.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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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더 중요해진 것은 인간의 해석이다. 팬들은 정확한 판정보다 왜 그런 판정이 내려졌는지 알고 싶어 한다. 데이터는 넘쳐나지만 그것으로 상상하고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내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기술은 효율을 높였지만 정당성과 감정, 의미를 완성하는 것은 사람이다.

    변화의 두 번째 축은 자본이다. 스포츠는 이제 금융 자본의 주요 투자 대상이다. 아크토스, 레드버드, 식스스트리트 등 글로벌 사모펀드들은 구단, 리그, 스타디움, 중계권 등을 포트폴리오로 묶어 산업 구조를 재설계하고 있다.

    유럽 5대 리그의 36% 이상 구단이 이미 사모펀드,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았고, 프리미어리그는 과반이 그렇다. 2025년 기준 프리미어리그 20개 구단 중 아스날·리버풀·첼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빅 클럽들을 포함한 13팀의 지분을 미국자본이 보유하고 있다. 유럽축구 M&A 거래액은 2018년 6670만유로에서 2024년 22억유로로 급증했다. 스포츠산업의 투자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국가와 국제스포츠기구 단위 자본의 움직임도 거세다. 사우디 국부펀드 PIF는 LIV 골프에 약 50억달러를 투입하며 골프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FIFA는 2025년 클럽월드컵 상금에만 10억달러를 배정하는 등 투자와 수익규모를 대폭 키웠고, 2026 북중미 월드컵 역시 48개국, 104경기로 확대되며 약 120억달러의 수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면에 PIF와 글로벌 OTT와의 투자구조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세 번째 흐름은 플랫폼이다. 스포츠 콘텐츠 유통의 중심은 레거시 미디어에서 글로벌 OTT로 넘어갔다. 과거 중계권이 국가·지역별로 쪼개졌던 이유는 기술적·자본적 제약 때문이었다. OTT는 글로벌 IP(지식재산권)를 구매, 단일 플랫폼으로 지역을 넘어 세계 시장에 직송출함으로써 기존의 투자·유통 방식을 한 번에 뒤집었다. 스포츠 콘텐츠는 몸값이 오르고, 지역·국가별 중간 유통 없이 OTT에 얹혀 한 방에 세계 시청자들에게 전달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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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박상훈·재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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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BA는 ESPN, ABC, NBC, 그리고 아마존 프라임과 2024년 이전 계약액의 3배인 11년간 760억달러 계약을 체결하며 스포츠 중계권 역사를 다시 썼다. 그중 NBA는 40년간 파트너였던 TNT를 배제, 아마존을 선택했다. 아마존은 25~26 시즌부터 연간 18억달러를 지불하며 리그 66경기와 NBA컵 전체를 전 세계로 직송출한다. 이 선택의 이유는 대폭 상승된 중계권료와 TNT가 절대 제공할 수 없는 아마존의 ‘글로벌 디지털 스트리밍 인프라’다.

    이런 변화는 로컬 미디어 시장에 구조적 압박을 만들고 있다. 한국 드라마 산업이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재편되며 국내 방송사의 제작·유통력이 약화된 것처럼, 스포츠에서도 IP들은 빠른 속도로 OTT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고, 이 ‘플랫폼 권력 이동’ 현상은 전통 미디어의 생존 기반을 급속히 약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역설적으로 ‘로컬’이 주목받는다. 규모로는 글로벌과 경쟁하기 어렵지만, 로컬의 디테일과 정서는 차별성이자 기회 요인이다. 오히려 글로벌 플랫폼을 타고 로컬이 세계적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한국의 ‘최강야구’와 ‘골 때리는 그녀들’은 스포츠와 K예능을 결합해 해외 팬들에게 소비되는 글로벌 콘텐츠가 되었다. 로컬이던 ‘K’가 글로벌에서 경쟁력을 갖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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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캡처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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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시대에 새로이 요구되는 인간의 역할과 존재 의미는 여전히 숙제다. 기술은 정교해지고 자본은 거대해지지만, 방향과 의미를 만드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스포츠는 이 질문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영역이다. 기술에 의해 혁신되는 판정의 정확성, 알고리즘의 효율 못지않게 사람이 주관하고 만들어내는 절차의 정당성, 현장감, 공동체의 온기도 중요하다. 선수의 땀과 팬들의 함성, 승부의 드라마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기술과 자본, 플랫폼의 지배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인간의 역할과 존재감은 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미래의 스포츠는 거대한 글로벌 흐름과 작지만 정교한 로컬 생태계가 함께 만들어갈 것이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인간이 있을 것이다. 2025년은 스포츠가 기술, 자본, 플랫폼에 의해 재편되는 변곡점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가치를 주목하게 된 해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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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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