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사퇴 날 尹에 “충성”
尹 “李에 대사 기회 줘야”
강호필, 尹 계엄 언급하자 이탈
명분 없는 충성은 모래성
윤 전 대통령이 ‘이종섭 대사’ 계획을 처음 밝힌 시점을, 특검은 2023년 9월 12일로 특정했다. 그 전날 민주당은 국방장관을 탄핵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직무 정지 위기에 몰린 이 전 장관이 사의를 밝혔고, 윤 전 대통령이 “대사든 더 일할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선 특검이 어느 정도 진상에 접근했다고 생각한다.
특검 공소장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문제의 9월 12일 오전 국무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이 전 장관은 대통령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며 “충성”을 외쳤다. 회의에 참석한 인사는 “대통령 얼굴에서 안도감이 느껴졌다”고 전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국방부 핵심들 사이에선 ‘이종섭 대사설’이 퍼졌다. 물론 이 전 장관은 ‘02-800-7070’이 대통령 집무실 전화번호인지, 대통령이 격노했는지 끝까지 함구했다.
각 군의 경례 구호는 단결·필승 등으로 다르지만, 대통령에게는 오직 “충성” 구호를 붙인다. 윤 전 대통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대통령이 됐다. 그의 말처럼 ‘충성’ 구호는 윤석열 개인이 아닌 국군 통수권자에 대한 무한 충정의 다짐이다. 그런데 그는 계엄 실패 후 “사람을 쓸 때 가장 중요시할 것은 충성심”이라고 말했다. 믿었던 부하에게 배신당했다는 후회일 것이다.
사실 그도 충성할 장군을 고르고 고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작년 6월 안가에서 강호필 대장, 곽종근·이진우·여인형 중장과 만찬을 했다. 동석한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이 4명은 충성을 다하는 장군’이라고 보증했다. 여인형은 그 몇 달 뒤 휴대전화에 ‘ㅈㅌㅅㅂ 4인은 각오하고 있음’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충성파 장군’ 4인이 지휘하는 지작사(ㅈ), 특전사(ㅌ), 수방사(ㅅ), 방첩사(ㅂ)를 뜻한다.
그러나 실전은 다른 법이다. 특검 조사를 보면 강호필은 ‘충성 대열’에서 먼저 이탈했다. 그는 안가 만찬 한 달 뒤인 작년 7월 미국을 방문한 대통령을 수행했다. 이때 윤 전 대통령이 민주당을 비난하면서 “군이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걸 듣고, 그는 “차라리 전역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다른 사령관들도 ‘충성’ 다짐을 후회하는 듯하다. 내란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방첩사령관은 “이 마당에 대통령 편을 들 것 같나. 천만에”라고 했다.
시대착오적 계엄의 원인을 두고 전 정부 핵심 인사들은 “윤석열·김용현 두 사람이 서로를 작전·법률 전문가로 오인한 탓”이라고들 한다. 검찰총장과 합참 작전본부장 출신인 두 사람의 계엄 준비·실행이 블랙 코미디 같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충성을 오판했다. 과거의 부하가 법정에서 자기를 “피고인”이라고 부르는 장면에서 윤 전 대통령은 이를 절감했을 것이다.
홍위병의 충성을 에너지 삼아 문화 대혁명을 주도했던 강청 등 4인방은 마오쩌둥이 죽자 한 달이 안 돼 중국 공산당에 체포됐다. 대의·명분 없는 권력에 대한 충성은 모래성 같은 법이다. 공무원법에서 복종 의무를 삭제하면서 자기들에겐 충성을 요구하는 권력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내란 특검의 핵심 관계자는 최근 주변에 “군인들을 조사해 보니 언젠가 또 계엄이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고 한다. 정치에 이용당한 군의 좌절과 분노가 크다는 뜻일 것이다. 충성을 갈구하는 권력이라면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최경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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