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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목)

    [36.5˚C] 1년이라는 시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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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한국일보

    1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사고 조사 공청회 연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임지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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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어코 머리카락 뭉텅이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간 1년이란 시간의 무게가 마음속에 쿵 들이쳤다. 계엄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 잊을 수 없는 상흔이 또 한 번 새겨진 날, 2024년 12월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곧 1주기를 맞는다.

    1년 내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의 독립성 보장을 촉구했던 유가족은 결국 이달 초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거리에서 삭발을 감행했다. 참사 당일에 머물러 있는 듯 차갑게 굳은 얼굴, 입술은 바싹 매말라 있었다. 허망하게 쌓이는 머리카락을 지켜보던 이들의 "미안해, 미안해" 외침은 거리를 울렸다. 벌써 몇 번의 참사, 몇 번의 유가족 삭발식인가.

    유가족의 1년은 고군분투의 연속이었다. 가족을 잃은 상황에서 정국은 계엄과 탄핵으로 헝클어졌고, 항공 사고 특성상 증거 하나를 수집하는 데 수개월이 걸렸으며, 정보는 소수에게만 쥐여졌다. 진상 규명이 제자리걸음하는 사이 유가족이 세상을 떠나는 일까지 생겼다. 그렇게 응집된 슬픔과 고통은 어마어마한 설움이 돼 그들을 대통령실 앞으로까지 이끌었다.

    그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세상은 느리게 움직였다. 안전할 줄로 믿고 있었지만 참사가 발생하고서야 위험성을 알게 된 공항 시설들은 이제 막 개선되고 있다. 활주로 인근에 놓이는 물체는 '부러지기 쉬운 재질'이어야 한다는 기준, 매년 공항별로 '조류 충돌 위험' 관리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무가 담긴 법 개정안이 18일에서야 입법 예고로 공식화됐다. 유가족이 줄곧 요구했던 사조위의 국무총리실 이관 법도 최근에서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또 다른 갈등 소지도 커지고 있다. 무안 지역 상인들은 1년간 공항이 장기 폐쇄되며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일곱 차례 연장 끝에 2026년 1월 5일까지로 예정된 공항 폐쇄를 더 이상은 늘리지 말라고 요구 중이다. 주민들도 항공 접근성이 단절됐을 뿐만 아니라 항공 정책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지고 있다고 호소한다. 시민단체들은 재개항을 서둘러 달라는 성명을 내고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항의하는 방식으로 단체 행동에까지 나서고 있다.

    어수선하기만 한 참사 수습 과정을 서둘러 안정화해야 한다. 난제가 만만치 않지만 지지부진한 진상 규명은 모두에게 상처만 남김을 이미 여러 참사를 통해 경험하지 않았나. 유가족의 바람대로 사조위가 총리실 산하로 옮겨질 수 있게 됐지만, 그동안 진행한 조사의 자료를 정리해 보내는 작업부터도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차질을 빚는 변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회와 정부가 세심하게, 끝까지 돌봐야 한다. 상속세 공제, 주민 지원 등 참사 관계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대안 마련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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