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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0 (토)

    누가누가 잘하나 [생활 속, 수학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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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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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TV에서 사라졌던 오디션 프로그램이 최근 들어 대학가요제를 필두로 다양한 형태로 재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디션 대회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필자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으로는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인 "누가누가 잘하나"가 있다.

    이런 프로그램에는 언제나 다양한 형태의 심사방식이 있고 심사결과가 공정했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은 항상 존재하곤 했다. 그런데 만약 심사대상자들이 각기 다른 심사위원들에게 평가를 받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 성적이 정해진다면, 그 심사는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평가방식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상황은 우리 주위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바둑기사들은 각기 다른 기사들과 대국을 치르지만 단순히 승률이 높다고 해서 순위가 높은 것은 아니다. 각종 기전에서 예선을 거쳐서 본선에 진출하는 기사들의 경우 예선전 성적이 뛰어나야 본선 진출이 가능하지만, 명인전을 비롯한 일부 기전에서는 상위랭킹 선수들에게 시드를 배정하여 본선에 바로 진출하도록 한다. 이런 경우 예선을 거친 기사들보다 본선에 막바로 진출한 기사들의 승률이 오히려 낮을 수 있다.

    한국기원은 2005년 점수기반의 랭킹제도를 도입을 했지만 초창기 랭킹제도에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바둑에서 승리하여도 점수가 내려가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07년 미국 체스협회에서 사용하는 일로레이팅(Elo rating)을 전격적으로 도입하게 된다. 일로레이팅은 누구와 대결을 했는지 여부에 따라서 결과에 따른 보상이 다른 시스템이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국제축구연맹(FIFA)도 일로레이팅 기반의 랭킹 산정 방식을 도입하였다. 이런 이유로 한국대표팀 FIFA 랭킹이 낮은 팀과 평가전을 치를 경우 이기더라도 순위상승에 크게 도움은 되지 않지만 지게 되면 타격이 매우 크다.

    대부분 경기일정은 유사하지만 일부 경기에서만 수준이 다른 팀을 상대한다면 평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프로야구의 경우 모든 팀이 162경기를 치르지만 같은 지구에 속한 팀과 총 52개의 경기를 치른다는 점만 같고 나머지 110개 경기의 경우 같은 리그의 다른 지구에 속하는 팀들과의 경기 구성도 다르고, 다른 리그 소속팀과의 인터리그 일정은 역시 제각각이다. 따라서 특정팀의 경우 해당 시즌에는 유독 강팀과의 경기가 상대적으로 많이 잡혀있을 수 있다. 이 경우 경기 승패로만 순위를 가른다면 억울하게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일정의 유불리를 고려해서 가을야구 진출팀을 가리는 것이 공정할까?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실제 경기결과와 관계없이 순위가 결정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일정 역시 경기의 일부분으로 간주하고 실제 승패에 따른 순위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느낄 수 있다. 물론 롯데 팬의 입장으로서 이렇게라도 롯데가 가을야구에 진출할 수 있다면 일로레이팅의 도입을 적극 주장해 볼 생각이다.

    한국일보

    장원철 서울대 통계학과·융합데이터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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